탄소중립을 위한 EU의 배출권거래제 개편과 국내 시사점 | 자본시장포커스 | 발간물 | 자본시장연구원
ENG

발간물

자본시장포커스

탄소중립을 위한 EU의 배출권거래제 개편과 국내 시사점
2023 01/02
탄소중립을 위한 EU의 배출권거래제 개편과 국내 시사점 2023-01호 PDF
요약
에너지 위기에도 선진국의 탈탄소 기조는 유지되는 가운데 최근 EU 배출권거래제(ETS) 혁신안이 잠정 합의되었다. 탄소중립을 위한 핵심 기제로 평가받는 EU ETS의 개편안은 2023년 예고된 국내 배출권거래제(K-ETS) 개편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무엇보다, NDC 감축목표 상향(2030년 40%)으로 K-ETS 허용배출총량(CAP)의 대폭 감축이 예상되며, 이에 따른 수급불균형 완화 수단으로 EU 같은 시장안정‘예비분’제도의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특히, 예비분을 공급망관리(scope3)나 ESG 등 외부감축과 적극 연계할 경우, NDC 이행은 물론 기업의 넷제로 활동에도 상당한 인센티브가 될 것이다. 또한 ETS와 연계된 EU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는 국내 할당정책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는바, 산업계도 유상할당 확대를 외면하기보다 유상할당 재정수입이 해당 산업의 저탄소 혁신투자를 위한 민관협력금융(blended finance) 재원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관심과 관점의 전환이 요구된다.
글로벌 탄소중립 흐름과 EU 배출권거래제 개편

글로벌 에너지위기로 화석연료 사용이 다시 늘고 그린워싱과 ESG 평가의 모호성으로 일부 기관투자자들이 자금을 회수하는 등 시장 혼란은 확대되고 있지만, 유럽과 미국 등 선진국의 탄소중립정책은 혼란과 상관없이 제도화되고 있다. 유럽은 탄소중립정책(Fit for 55)의 세부 규정 입법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고, 미국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통해 저탄소경제로 전환을 구체화하고 있다. 특히 EU가, 직접 개입(세제와 보조금) 방식의 전환 정책을 추구하는 미국의 IRA와 달리, 시장친화적인 탄소시장 메카니즘 운영의 오랜 경험을 살려 배출권거래제(EU ETS)의 활용을 강조한 가운데 최근 유럽 의회가 동 혁신안에 잠정 합의하면서 EU ETS는 글로벌 탄소중립의 핵심 기제로 부상하고 있다.

혁신안에는 여러 내용이 담겨 있지만, 핵심은 탄소중립 로드맵과 EU ETS의 연계를 강화하고, 그로 인한 시장구조변화에 대응하여 ETS 미시구조를 개편하는 내용이다. 여기에 EU ETS의 글로벌 확장성과 탄소중립의 글로벌 확산을 위해 탄소국경조정제도(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 CBAM)라는 새로운 제도를 도입한 것도 주목할만하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혁신안은 우선 배출량의 감축률을 대폭 높였다. EU ETS가 NDC 목표 달성을 견인할 수 있도록 ETS 배출권허용총량(CAP)의 연간 감축률을 기존 2.2%에서 4.2%로 대폭 상향했다. 이같은 감축률 상향은 NDC 목표(1990년 대비 55%)와 ETS를 연계하는 핵심 요소이다. 둘째, 감축률 상향이 불가피하게 ETS시장 불균형을 야기하는 상황을 염두에 두고, 충격 완화를 위해 시장안정예비분(MSR) 제도의 역할을 강화했다. EU는 그간 MSR이 경매이연(backloading)과 함께 시장 수급 안정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하고, 조정 한도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보완했다. 마지막으로, CBAM을 새로 도입하고 ETS와 연계했다. NDC 강화에 따른 탄소누출(carbon leakage) 방지와 탄소비용의 공정한 분담원칙에 따라 국적에 상관없이 탄소비용을 지불하도록 CBAM을 도입하는 동시에 탄소비용을 ETS 시장가격에 기초하여 산정하도록 함으로써 ETS 할당제도의 변화 역시 불가피해졌다. 방향은 CBAM 대상 업종에 대해 유상할당을 늘리고 무상할당을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것이다. 

이상의 혁신안은 기존의 느슨한 교토의정서 체계에서 작동하던 배출권거래제를 파리협정에 부합하는 배출권거래제로 전환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나라는 K-ETS를 2015년 도입하였지만 교토의정서 당사국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간 NDC 감축 제약도 없었고 NDC와 ETS간 연계도  매우 느슨했다. 시장친화적 ETS를 선제적으로 도입한 것에 의미를 두었다. 그러나 지금은 당사국으로서 글로벌 미션과 선진국으로서 책임을 K-ETS에 반영해야 할 위치에 서 있다. 이런 점에서 EU ETS 혁신안은 K-ETS 개편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마침 작년 11월 배출권거래제 발전 방향을 발표함에 따라 앞으로 세부적인 개편안을 마련하는 과제가 남았다. 이에 본 고는 EU ETS 혁신안의 주요 시사점을 도출하고 관련 개선방안을 제안한다. 


국내 시사점: K-ETS CAP 조정 고려사항

지금의 K-ETS CAP은 2018년 NDC를 반영한 것으로 2021년 뉴NDC(2030년 40% 감축)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비록 2차 계획기간(2018-2020) CAP 대비 4.7% 감축했지만, 뉴NDC의 급격한 감축목표 상향으로 지금의 CAP을 유지하는 한 2030년 NDC 달성은 어렵다. 정부도 이점을 감안하여 2023년에 CAP 재설정 계획을 밝히고 있다. 본 고는 재설정과 관련해서는 두 가지 사항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첫째, 정책시차 축소를 위한 제도 개선이다. 2023년에 CAP을 조정하더라도 적용 시기가 불확정적이고 2030년까지 이행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아 NDC 달성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여기에 앞으로 글로벌 규제의 불확실성 등을 고려할 때 NDC 변화를 K-ETS CAP에 즉각 반영하여 정책 시차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제도화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온실가스 관련 국가 거버넌스를 조정하는 것이다. EU처럼 NDC 목표설정과 ETS CAP 조정 권한을 단일 기구에서 수행토록 하는 것이다. EU는 두 정책 제안 권한을 EU 집행위가 갖고 있기 때문에 유기적이며 정책시차가 길지 않다. 그래서 EU는 NDC 감축안을 2020년 9월 발표하고, CAP 조정안을 약 10개월 후인 2021년 7월에 발표했다. 우리나라도 정책시차를 축소하고 시장의 예측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두 정책 권한을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에서 담당하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1) 이렇게 하면 2021년말 NDC를 발표하고도 그 이행을 담보할 ETS CAP이 아직까지 발표되지 않는 진공상태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NDC 목표감축을 위해서는 2018년 7.2억톤을 2030년 4.3억톤으로 2.9억톤을 감축해야 하는 상황에서, 배출권 CAP 감축이 늦을수록 이행 가능성에 대한 신뢰의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둘째, CAP 감축률을 NDC 감축률 이상 설정할 필요성에 관한 것이다. EU의 경우 NDC 감축률은 1990년 대비 55%인 반면 ETS의 CAP 감축률은 2005년 대비 61%를 목표하고 있다. 연간 감축률로는 2030년까지 NDC는 1.98%씩 감축하고, ETS CAP은 4.2%를 감축하는 것에 해당한다. 이렇게 차이를 두는 이유는 ETS가 NDC 핵심 이행 수단임에도 불구하고, EU ETS 적용 대상 배출량이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41%만을 커버하는 낮은 커버리지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판단한다. 우리나라도 EU처럼 ETS가 NDC의 핵심 이행 수단이다. ETS의 온실가스 배출량 커버리지가 100%인 나라는 없으며, 우리나라는 73%이다. ETS 대상이 아닌 배출기업에 대해서는 감축을 유도하거나 강제할 정책 수단이 마땅치도 않다. 이렇게 볼 때 NDC 감축률보다 높은 CAP 감축률은 국가적으로는 합리적일 수 있다. 

그러나 급격한 감축률 상향은 산업계의 수용성 면에서 많은 부작용이 예상된다. 감축률 상향은 감축비용의 급격한 상승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급격한 감축률 상향은 감축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의 대폭 강화와 함께 시행될 필요가 있다. 본 고는 이와 관련하여 기업의 외부감축활동과 CAP 감축률 상향의 연계를 제안한다. TCFD 공시 의무화 흐름으로 기업의 외부감축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만큼, 공급망(supply chain) 기업에 대한 감축활동 지원 성과를 ETS시장 예비분 제도와 연계하는 인센티브제도를 도입할 경우, CAP 감축률 상향에 대한 산업의 수용성에 도움이 될 수 있다.2) 즉, NDC 감축률보다 높은 CAP 감축률을 할당대상기업에 적용하고, 할당대상기업은 공급망기업에 대한 외부감축의 성과를 배출권을 통해 보상받도록 하는 것이다. 국가적으로 NDC 이행률을 높이고 기업에게는 보상메카니즘을 통해 대중소기업 상생이나 ESG 등을 통한 외부감축 활동을 적극 유도하는 것이다. 


국내 시사점: 수급불균형 완화를 위한 시장안정제도 개편

NDC를 반영한 CAP 감축률 상향은 배출권시장의 장기적인 수급불균형 요인이 된다. 감축투자 한계비용이 느리게 하락할수록 CAP 감축률 상향은 배출권 수요 증가 압력을 높인다. 물론 수요 증가 압력의 현실화 여부는 수급구조에 달렸다. 배출권 공급과잉인 EU ETS의 경우 초과수요 압력이 현실화할 가능성은 낮다. EU는 경매이연(backloading) 제도와 시장안정예비분(MSR) 제도 도입 이후 공급과잉이 완화되고 있으나, 여전히 상당 양의 배출권(2020년 15억톤)을 정부가 수급 조절을 위해 비축하고 있다. 그럼에도 EU는 NDC 충격을 고려하여 MSR 예비분 물량과 방출 한도를 확대하고, 배출권가격이 이상급등하는 경우 MSR을 공급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는 등 수량조정방식의 MSR 개선방안을 혁신안에 포함하였다. 

우리나라는 EU ETS와 시장구조가 상당히 다르다. 1-2차 계획기간 동안 배출권 CAP은 줄지 않고 증가했고, 감축 제약이 약해 거래 유인도 약했다. 3차 계획기간 동안 시장조성자, 유동성공급자 도입 등 시장구조 개선에도 불구, 거래 부족과 유동성 부족, 그에 따른 공급자 우위의 시장구조는 지속되고 있다. 이런 시장구조 아래서 CAP 감축률 상향은 EU와 달리 배출권 초과수요 심화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불균형 완화를 위해 시장안정제도를 혁신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우리나라는 수량조정방식보다 가격개입방식의 시장안정제도를 주로 운영하고 있다. 배출권가격이 일정한 밴드를 벗어나면 정부가 최고 또는 최저가격을 설정하여 시장을 안정시키는 가격상하한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가격개입방식은 수급불균형이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모순에서 기인할 경우 시장안정화 효과에 한계가 있다. 대폭적인 CAP 감축률 상향은 구조적인 수급불균형 요인으로 가격개입보다 EU의 MSR 같은 수량개입이 시장안정화에 효과적일 수 있다. 다만, EU식의 MSR 방식을 강화할 경우 가격발견과 수급조절을 위해 현재 도입하고 있는 시장조성자기능이나 유동성공급기능 같은 재량적 시장안정화제도들과 제도적으로 어떻게 조화할 것인가가 이슈가 될 수 있다. 

EU방식의 MSR을 도입한다면 정부가 어떤 방식으로 예비분을 확보할 것인가도 중요한 검토사항이 된다. NDC를 고려하여 CAP 감축률을 높인 상태에서 기업 할당을 줄이고 예비분을 확보하는 방식은 초과수요를 더 심화할 것이므로 대안이 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기업들이 조직경계 밖에서 거둔 외부감축 성과를 상쇄배출권 형태로 ETS 시장의 예비분으로 확보하는 것이 유력한 방안이 될 수 있다. 이는 앞서 언급한 대로 기업 외부감축 활동을 금전적으로 보상하는 인센티브제도이자, 규제시장인 ETS 시장과 기업의 자발적인 외부감축 활동을 연계하는 연결고리로서 의미가 있다. 특히, 외부감축 활동이 해당 기업의 공급망기업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도록 유도할 경우, MSR 제도를 매개로 하여 탄소중립을 위한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ESG 활동 등이 활성화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국내 시사점: CBAM 대응을 위해 할당정책의 근본적 변화 필요

앞서 CAP 감축률 상향이나 시장안정화제도는 탄소중립 흐름에 맞게 EU ETS 제도의 내적 효율성을 제고하는 혁신 방안들이다. 이와 달리 CBAM은 탄소누출 방지를 통해 ETS 시장의 확장성을 도모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의 성격을 갖는다. CBAM이 도입되면 EU 역내로 수입되는 재화에 대하여 EU 기업과 동등한 수준으로 탄소비용을 부과한다. 기업에게 탄소무역규제로 받아들여지는 CBAM이 ETS와 연계됨에 따라 ETS 역시 할당제도를 중심으로 개편이 불가피하다. 

EU는 개선안에서 CBAM 대상이 되는 고탄소부문(철강, 알루미늄, 시멘트, 비료, 발전, 수소)의 무상할당을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로드맵을 발표했다. 무상할당을 폐지하고 유상할당으로 전환할 경우 EU는 수입기업에 대해 그만큼의 탄소비용을 징구할 수 있게 됨에 따라 탄소비용 부과라는 대외적 명분에 더하여 EU 재정 수입의 증대라는 실익을 얻게 된다. CBAM의 목표가 표면적으로는 탄소누출방지이나 실질적으로는 EU 재정수입인 것이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2015년부터 배출권거래제를 운영하고 있어 국내에서 지불한 탄소비용의 상쇄가 가능한 국가로 지정될 개연성이 있는 만큼, 탄소무역규제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나라 배출권 할당제도의 개편은 불가피해졌다. CBAM은 탄소비용을 국내에 지불할 것인가 아니면 EU에 지불할 것인가 문제이지, 탄소비용 자체를 면제받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현재 무상할당업종으로 분류된 철강, 알루미늄, 시멘트, 비료 등에 대해서는 대EU 수출 규모 등을 고려하여 CBAM 일정에 맞춰 유상할당으로 전환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다만, 비용발생도와 무역집약도 기준으로 무상할당 대상임에도 CBAM으로 인해 유상할당 전환하는 경우에는 해당 업종의 유상할당 재정수입을 해당 업종의 저탄소정책자금으로 재투자될 수 있도록 기후대응기금 지출구조를 조정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CBAM을 계기로 우리나라 배출권시장의 유상할당정책도 변화가 불가피해 보이는 바, 산업계도 유상할당을 단순히 지연하기보다는 지불한 탄소비용이 산업계에서 시장실패 가능성이 높은 저탄소 혁신투자부문으로 환류할 수 있도록 관심과 관점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1) 우리나라는 각각의 법령에 근거하여 NDC는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CAP 감축률은 배출권 할당위원회로 권한이 분산되어 있다. 
2)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로 인해 K-ETS 적용 대상이 아닌 기업 중에는 ETS 적용대상기업과 가치사슬(생산/소재/유통)로 연관된 중소기업들이 많을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