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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자본 유입을 통한 벤처투자시장 활성화 정책의 시사점
2026-02호 2026.01.19
요약
정부는 ‘벤처 4대 강국 도약’을 실현하고자 법정기금과 퇴직연금의 참여 확대 및 150조 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 조성을 통해 공공 주도의 시장 구조를 민간 중심으로 전환하고자 한다. 민간 투자자에게 위험 분담 및 수익 극대화 유인을 제공함으로써 지금까지 접근이 어려웠던 모험자본시장의 고수익성에 접근할 수 있는 효율적 투자 수단을 제공할 수 있다. 국민성장펀드는 기존 정책펀드와의 효율적인 역할 분담과 협업을 통해 자금 집행의 유연성과 정책 목표 달성의 즉각성을 확보하는 중추적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기대된다.
법정기금과 퇴직연금은 양질의 인내자본(patient capital)으로서 벤처시장에 기여할 잠재력이 크다. 67개 법정기금은 수익률 제고와 위험 분산 차원에서 대체투자의 일환으로 벤처투자를 검토하고, 고위험 속성을 통제하기 위해 재간접(모펀드) 구조의 중위험-중수익 투자 수단으로 전환하는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DB형 퇴직연금은 현행 계약형 지배구조에서도 일임운용(OCIO) 허용을 통해 적극적인 벤처투자가 가능한 반면, 투자의사결정 주체가 파편화되어 있는 DC형 퇴직연금은 집합운용을 위한 지배구조 개편과 운용 규제 완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디폴트옵션 적격상품인 자산배분형펀드(TDF)의 기초자산에 비유동성 대체자산을 포함하는 등 정교하고 단계적인 유입 전략을 추진해야 한다.
정책 패키지로 추진되는 정부의 벤처투자 활성화는 우리 벤처생태계의 재도약을 도모할 수 있는 바람직한 정책 방향이나, 개별 민간자금의 고유한 속성을 고려한 시장친화적 집행이 전제되어야 한다. 투자 자금의 일시적 공급 과잉으로 인한 가치상승(valuation) 문제와 벤처캐피탈의 도덕적 해이 등의 부작용을 차단하기 위하여 시장 흡수능력에 기반한 단계적 자금 집행과 장기 성과 중심의 운용사 규율 강화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M&A 및 세컨더리 시장 등 회수 인프라 확충을 병행함으로써 국내 벤처투자 시장의 양적 성장을 넘은 질적 고도화를 견인하여야 한다.
법정기금과 퇴직연금은 양질의 인내자본(patient capital)으로서 벤처시장에 기여할 잠재력이 크다. 67개 법정기금은 수익률 제고와 위험 분산 차원에서 대체투자의 일환으로 벤처투자를 검토하고, 고위험 속성을 통제하기 위해 재간접(모펀드) 구조의 중위험-중수익 투자 수단으로 전환하는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DB형 퇴직연금은 현행 계약형 지배구조에서도 일임운용(OCIO) 허용을 통해 적극적인 벤처투자가 가능한 반면, 투자의사결정 주체가 파편화되어 있는 DC형 퇴직연금은 집합운용을 위한 지배구조 개편과 운용 규제 완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디폴트옵션 적격상품인 자산배분형펀드(TDF)의 기초자산에 비유동성 대체자산을 포함하는 등 정교하고 단계적인 유입 전략을 추진해야 한다.
정책 패키지로 추진되는 정부의 벤처투자 활성화는 우리 벤처생태계의 재도약을 도모할 수 있는 바람직한 정책 방향이나, 개별 민간자금의 고유한 속성을 고려한 시장친화적 집행이 전제되어야 한다. 투자 자금의 일시적 공급 과잉으로 인한 가치상승(valuation) 문제와 벤처캐피탈의 도덕적 해이 등의 부작용을 차단하기 위하여 시장 흡수능력에 기반한 단계적 자금 집행과 장기 성과 중심의 운용사 규율 강화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M&A 및 세컨더리 시장 등 회수 인프라 확충을 병행함으로써 국내 벤처투자 시장의 양적 성장을 넘은 질적 고도화를 견인하여야 한다.
들어가는 말
정부는 ‘벤처 4대 강국 도약’이라는 목표하에 공적자금이 견인하는 우리 벤처투자 시장에 민간자금 유입을 확대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을 다방면으로 경주하고 있다. 대통령 공약 사항으로 법정기금 및 퇴직연금의 벤처투자 확대가 제시되었으며, 150조원 규모로 조성되는 국민성장펀드의 상당 부분도 벤처시장에 민간자금 유입을 위한 마중물로 기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2025년 8월 말에 국회를 통과하여 올해 3월부터 시행 예정인 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BDC)를 통해서도 모험자본시장에 개인을 포함한 민간자금의 유입이 기대되는 상황이다. 이러한 정부 정책이 신속하게 추진되고 효과적으로 시행된다면, 적어도 자금의 수급 측면에서는 국내 벤처생태계에 새로운 도약의 발판이 마련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사실 벤처생태계 활성화는 지금까지 과거 모든 정부에서 예외 없이 추진되었던 정책 과제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정부의 시장 활성화 정책은 공공자금이 주도해 온 우리 벤처투자 시장을 민간자금 중심으로 전환하려는 적극적 대응이라는 점에서 차별성을 갖는다. 정부 재정을 기반으로 하는 공공모태펀드1) 중심의 국내 벤처투자 시장을 연기금 및 금융기관, 개인 등으로 투자자 범위를 확대함으로써 실질적으로 민간자금이 주도하는 벤처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한 목적이다. 민간의 참여를 유인하기 위하여 정부 정책의 기본 방향은 벤처투자에 수반되는 위험의 상당 부분은 정부가 흡수하는 대신 성공적 투자로 인한 수익의 대부분은 민간 투자자가 가져가는 구조를 지향한다. 이는 민간의 자발적 참여라는 유인 기제임과 동시에, 지금까지 민간 또는 개인이 접근하기 힘들었던 모험자본시장의 높은 수익성에 접근할 수 있는 효율적 투자 수단의 제공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배경하에 신정부 들어 추진되는 벤처투자 시장에 민간자금 유입을 확대하기 위한 다양한 정부 정책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고, 이러한 정책 방안이 효율적으로 실행되기 위한 정책적 시사점을 정리하고자 한다. 다방면으로 추진되는 정부 정책은 시장의 수급 측면에서 일종의 정책 패키지 차원에서의 상승효과를 기대할 수 있겠으나, 일시에 집중되는 펀드 조성과 경쟁적 운용 환경은 운용사(GP) 입장에서는 양질의 투자 기회를 확보하기 어려운 시장 상황이 가중됨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민간자금 유입이 집중되는 결성 연도의 벤처펀드는 기대보다 저조한 성과로 해산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따라서 최근 벤처투자 확대를 위한 정부 정책에서 요구하는 민간자금의 본원적 속성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책 실행의 중장기 로드맵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벤처투자는 지속적으로 유입되는 양질의 인내자본(patient capital)을 요구한다. 자금의 양과 질 모두에서 어려움을 호소하는 국내 벤처투자 시장이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서는 적정 규모의 자금이 지속적으로 유입되고 효율적으로 배분되는 것이 중요하다.
국민성장펀드: 유연하고 즉각적인 정책 목표 달성
지난해 정부는 국민성장펀드 국민보고대회를 통해 향후 5년간 150조원 이상의 자금을 조성하여 첨단전략산업 및 벤처생태계 전반에 지원하는 계획을 발표하였다.2) 펀드의 재원은 정부 재정과 함께 공·사적 연기금, 금융회사, 국민 참여 자금 등으로 구성되며, 인공지능, 반도체, 바이오, 미래차, 로봇, 수소, 디스플레이, 방산 등 10개 첨단전략산업 및 벤처생태계 전반에 지원될 계획이다. 자금의 집행 방식을 살펴보면 전체 재원의 2/3(100조원)는 인프라투융자나 초저리대출 같은 대출 방식의 정책금융으로 지원되며, 기업에 대한 지분투자나 펀드 출자를 의미하는 투자 방식의 금융 지원이 나머지 50조원 규모다.

올 한 해 전체 30조원 규모의 국민성장펀드에서 10조원의 자금이 직접 또는 간접투자 방식으로 시장에 유입될 계획이다. 여기에는 벤처투자로 대표되는 모험자본시장과 함께 첨단전략산업3)의 메가프로젝트에 대한 통합패키지 차원의 금융 지원이 포함되어 있다. 제조업 AI 전환, 밸류체인 전반 지원, 지역성장·스케일업 기업 지원 등은 중기부의 모태펀드를 포함하여 개별 정부 부처의 기존 정책펀드(산업섹터펀드)와 중첩되는 부분이다. 따라서 국민성장펀드 추진단은 각 부처의 산업 육성을 위한 산업섹터펀드와의 영역을 구분하여 효율적 지원이 이루어지도록 부처 간 협업을 강조하고 있다. 예를 들면 모태펀드는 창업초기 벤처기업 육성의 역할이라면, 국민성장펀드는 첨단전략산업 생태계의 스케일업 및 대규모 인프라(설비투자)에 집중하는 방식 등이 거론된다. 이러한 영역 구분과 함께 각 부처별 산업섹터펀드에 대규모 유망 투자 건이 있는 경우 국민성장펀드의 매칭 투자 같은 협업 방안도 고려될 수 있다.
이상의 논의를 종합하면, 국민성장펀드는 벤처생태계 활성화라는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가장 우선적으로 집행될 수 있는 즉각적이고 유연한 정책자금으로 기능할 수 있다. 이에 비해 후술하는 법정기금 및 퇴직연금 적립금은 유효한 투자시장이 조성되고 투자 수단(investment vehicle)의 실효성이 확인되어야 본격적으로 시장에 유입될 수 있는 자금 성격이다. 한편 국민성장펀드의 재원 조성 및 투자 실행은 법정기금 및 퇴직연금의 벤처투자 확대 정책과 밀접하게 연계된다. 현재 국민성장펀드는 자금의 집행 측면에서는 직접투자와 간접투자 등으로 구체적인 실행 방안이 속도감 있게 추진되고 있으나4), 재원의 조성에 있어서는 전체 모펀드의 79%를 차지하는 민간자금의 조달 가능성이 구체적이지 않은 상황이다. 국민성장펀드를 통한 법정기금의 벤처투자는 모펀드의 유한책임사원(LP)으로 참여하는 방식과 자펀드의 LP로 출자하는 방식이 모두 고려될 수 있다.
법정기금: 중장기 자산배분의 대체투자 수단
법정기금이란 정부 재정 활동의 일환으로 특정 정책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정부 예산, 자체 사업, 부담금 등을 재원으로 관련법에 따라 조성되는 정책성 기금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는 현재 국민연금기금을 포함하여 67개 법정 기금이 존재하며, 개별 기금의 자산배분계획에 따라 주식 및 채권 같은 전통자산과 함께 벤처투자를 포함한 대체자산 등으로 기금의 여유자금을 운용하고 있다. 법정기금의 여유자금 운용에 있어 벤처투자는 수익률 제고 및 위험 분산을 위한 투자 다변화의 관점으로 실행되는 대체투자의 일환이다. 개별 기금마다 대체투자의 목적과 대체자산의 역할은 상이하나, 주식과 채권 사이에 위치하는 중위험-중수익 구조의 위험조정수익률 제고를 지향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법정기금이 벤처투자 시장에 본격적으로 유입되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인식되는 벤처투자의 고위험-고수익 성향을 중위험-중수익 구조의 투자 수단으로 전환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개별 벤처기업에 대한 직접투자는 그 자체로 초고위험 투자이나, 다수의 벤처기업에 분산투자하는 간접투자 방식의 벤처펀드(자펀드)에 대한 출자는 비교적 통제된 위험의 고위험-고수익 투자로 분류할 수 있다. 이러한 벤처펀드에 분산투자하는 재간접벤처펀드(모펀드)는 적어도 수익률 변동성 측면에서는 중위험-중수익 구조의 대체투자 수단이라 할 수 있다.5) 따라서 이러한 구조의 벤처투자를 실행하는 법정기금이 감내해야 할 실질적 위험은 유동성위험이다. 위험 대비 높은 수익률은 비유동성 프리미엄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모펀드의 존속기간은 10년 이상이며, 대부분 환매가 불가능한 폐쇄형으로 설계된다. 연기금투자풀을 통한 법정기금의 첫 번째 벤처투자 사례로 알려진, 무역보험기금의 벤처투자 역시 한국벤처투자(KVIC)가 운용하는 세컨더리투자 중심의 모펀드에 LP로 참여한 사례다. 일부 연금성 기금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법정기금에 있어 자펀드 단위의 LP 출자는 기금이 감내하기 어려운 위험 수준이므로, 환매 가능한 개방형 재간접벤처펀드(모펀드) 구조가 적합한 투자 수단일 것으로 사료된다.
법정 기금의 유형에 있어, 사업성 기금 대부분은 중소형 규모일 뿐만 아니라 자금의 대부분 또는 전부를 일 년 미만의 단기자금으로 운용하므로, 비유동성 프리미엄을 전제로 하는 대체투자(벤처투자)를 포트폴리오에 편입하기는 어렵다. 벤처투자 시장으로의 유입 가능성이 높은 유형은 금융성 기금이라 할 수 있다. 무보, 신보, 기보 등 다수의 금융성 기금은 운용규모가 큰 대형기금임에도 불구하고 포트폴리오 구성은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편이나, 최근 관리 부처의 변경 등으로 인해 대체투자를 포함한 적극적인 투자 다변화가 추진 중이기 때문이다.6) OCIO 방식 위탁운용을 채택하고 있는 대형기금 중에서 아직 벤처투자에 대한 별도의 자산배분을 하지 않는 기금의 경우 관련법 및 규정 개정을 통해 보다 적극적인 벤처투자 유인이 가능하다.7) 법정기금의 효율적 운용을 위해 설립된 연기금투자풀제도는 최근 대상 기관을 공기업 같은 공공기관으로 확대하면서 운용규모가 60조원을 상회하고 있어, 법정 기금의 벤처시장 유입을 위한 효과적인 정책 수단이 될 수 있다. 연기금투자풀은 이미 벤처투자 확대를 위하여 투자풀의 투자 가능 자산군에 기존 대체자산 외에 별도로 ‘모태펀드와 공동출자하는 벤처투자’ 라는 자산군을 설정하고 있다.
법정기금의 벤처투자 확대 방안의 주안점은 기금 유형별로 상이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벤처펀드에 LP로 참여할 수 있는 대형 기금은 자체적인 자산배분 과정에서 벤처투자의 신규 설정 또는 비중 확대를 유인할 필요가 있으며, 금융성 기금 등은 연기금투자풀을 활용하여 모펀드 LP 같은 재간접벤처펀드 형태의 투자 수단이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 동일한 정책 목적으로 추진되는 퇴직연금 적립금의 벤처시장 유입은 이와는 또 다른 양상이다.
퇴직연금: 점진적으로 확대되는 양질의 인내자본
벤처투자에 적합한 자금 성격은 이른바 양질의 인내자본(patient capital)이다. 장기투자를 전제로 하는 연금자산의 운용이 정확히 이에 부합한다. 우리 벤처생태계 역시 정책펀드를 제외하면 벤처투자의 마중물 역할은 대부분 국민연금기금에 의존해 왔다. 퇴직연금 적립금의 벤처시장 유입이 추진되는 배경이라 할 수 있다. 2025년 말 기준으로 제도 도입 20년이 경과한 우리 퇴직연금제도는 외형적으로는 450조원 규모의 거대 적립금으로 성장하였다. 하지만 적립금 운용 측면에서는 대부분 원리금보장상품(예금)에 편입되어 있으며, 제약적인 운용규제 등으로 인해 2% 초반대의 낮은 수익률이 지적되는 상황이다. 따라서 퇴직연금 적립금의 벤처시장 유입 필요성은 자금의 수요자(벤처생태계)가 아닌 공급자(퇴직연금) 입장에서 수익률 제고를 위한 분산된 위험의 포트폴리오 구축의 관점으로 제시되어야 한다.
퇴직연금은 현재 상장주식 등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 비중 자체가 미미할 뿐만 아니라8), 제도 유형을 막론하고 비상장주식에 대한 직접투자는 금지되어 있어 퇴직연금의 벤처시장 유입은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연금자산의 운용은 기본적으로 외부 전문가를 활용하는 간접투자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비상장주식에 대한 간접 또는 재간접 형태의 집합운용기구(펀드)를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이를 활용하는 방안으로 퇴직연금의 벤처시장 유입 정책이 추진될 수 있다. 즉, 퇴직연금의 벤처투자 확대는 적절한 투자 수단의 제공이 핵심이며, 투자의사결정 주체가 파편화되어 있는 퇴직연금 적립금의 운용 속성을 감안할 때 그 과정은 매우 점진적일 수밖에 없음을 강조한다. 법정기금의 벤처투자 확대같이 지침(IPS) 개정을 통해 전면적으로 추진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뜻이다. 벤처투자에 대한 투자자 신뢰가 확보되고 이러한 점진적 투자 확대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현행 퇴직연금제도의 지배구조와 운용규제를 합리적으로 개편하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퇴직연금은 DB형과 DC형(IRP 포함)의 운용 특성이 매우 다르므로 퇴직연금의 벤처투자 확대 전략 역시 제도유형별로 논의될 필요가 있다. 지배구조 측면에서도 현행 계약형 제도와 현재 도입이 논의되고 있는 기금형 지배구조는 그 양상이 상이하다. DB형 적립금은 기업이 운용성과에 책임을 지고 운용하는 구조로 원칙적으로 벤처투자에 대한 직접적 규제 제한은 없다고 해석할 수 있다. 현행 법령 및 감독규정 상 DB형은 직접 비상장주식 투자만 금지될 뿐 벤처펀드 등 간접투자는 제도적으로 불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DB 적립금의 높은 위험회피 성향을 감안할 때, 앞서 언급한 다양한 형태의 효율적인 재간접 구조의 벤처투자 수단이 적극적으로 제시되어야 한다.
DC형 및 IRP의 경우 개인이 투자위험을 부담하므로 안정성 확보와 투자편의 제고를 동시에 추구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장기적으로는 자금을 집합(pooling)해서 운용하는 기금형 퇴직연금이 도입되어야겠으나, 현행 계약형 지배구조에서도 퇴직연금이 벤처투자가 가능하도록 신규 금융상품의 제시와 관련 제도 개편이 병행되어야 한다. 복수의 벤처펀드를 편입하는 ‘공모형 사모투자재간접펀드’나 최근 도입된 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BDC)의 활용 등이 대표적이다. 해외사례를 보면, TDF 같은 자산배분형펀드의 기초자산(underlying asset)으로 벤처투자를 포함한 비유동성 대체자산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이 관측된다.9) 자산배분형펀드는 디폴트옵션의 주요 적격상품으로 활용된다는 점에서, 이를 통한 퇴직연금의 벤처투자 확대 전략이 보다 주효할 수 있다.
맺음말
정부가 추진 중인 벤처투자 활성화 정책은 법정기금의 벤처투자 확대, 퇴직연금 적립금의 벤처시장 유입, 국민성장펀드를 통한 민간자본 유입 촉진이라는 정책 패키지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 정책은 모두 벤처·혁신기업에 대한 자금 공급 확대를 목표로 하지만, 자금의 성격, 위험 부담 주체, 집행 방식에 있어 본질적인 차이를 갖는다.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모험자본시장 육성의 필요성을 감안하면 다양한 형태의 민간자금을 유입함으로써 벤처생태계의 재도약을 추진하는 정책 방향은 바람직하겠으나, 이러한 정부 정책의 시행은 민간자금의 고유한 속성을 충분히 고려하여 합리적이고 시장친화적인 구조로 추진되어야 한다.
동일한 목적의 정책 조합이 충분한 조율 없이 동시에 공격적으로 집행될 경우, 벤처시장에는 일시적인 자금 공급의 과잉이 발생할 수 있다. 벤처투자의 대상이 되는 우량 벤처기업의 공급은 단기간에 확대되기 어려우므로 제한된 투자 대상에 자금 공급이 집중되면서 기업가치의 급격한 상승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밸류에이션 상승은 초기에는 투자 활성화로 인식되나, 이후 후속 투자 유치 실패나 회수 지연 등으로 이어져 펀드 성과 악화와 자본 비효율로 연결될 수 있다. 정책자금이 풍부해지고 손실 완충 구조가 강화될수록, 벤처캐피탈의 도덕적 해이(moral hazard)의 가능성도 증가한다. 투자 심사 기준 완화, 공공자금에 대한 위험 전가, 관계 기반 투자 증가, 단기 성과 왜곡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부작용을 완화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정책적 관리 장치가 강구되어야 한다. 우선 정책 패키지를 통해 시장에 투입되는 자금 규모를 단계적으로 조절하고 시장 흡수능력에 기반한 집행 관리가 필요하다. 연간 집행 목표를 단순한 금액 기준이 아니라 양질의 투자 기회와 연동하여 유연하게 설정하여야 한다. 운용사 및 투자 품질에 대한 규율 강화가 요구된다. 정책자금 출자 시 성과평가 지표를 단기 집행률이 아닌 장기적인 회수성과와 위험관리 지표 중심으로 설계해야 한다. 회수(exit) 시장에 대한 인프라 구축이 강화되어야 한다. M&A 활성화나 상장제도 개선, 그리고 세컨더리 시장 활성화 등이 병행되지 않으면 일시적 자금 과잉은 시장 병목으로 연결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퇴직연금 적립금은 단기 과열기에 공격적으로 투입하기보다는, 장기투자 자산으로써 점진적으로 확대되는 양질의 인내자본으로 활용하는 전략이 바람직하다. 자금 성격에 맞춘 단계적 접근과 엄격한 거버넌스, 회수 인프라 확충이 병행된다면, 다방면으로 추진되는 이러한 정책 패키지는 우리 벤처생태계의 구조적 도약을 이끄는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 정책펀드의 실행은 모태펀드(Fund of venture funds)라는 재간접 방식이 일반적이며, 한국벤처투자(KVIC)와 농업정책보험금융원 등이 대표적인 공공모태펀드 운영기관이다. 재원의 속성은 상이하나 정책금융기관이 출자하는 한국성장금융(K-Growth)이나 국민연금기금으로 대표되는 공적연금의 재간접 방식 벤처펀드 출자도 시장에서는 정부 정책으로 시행되는 공공모태펀드의 일환으로 인식하고 있다.
2) 금융위원회, 2025. 9. 10, 대한민국 경제 재도약 150조원 국민성장펀드가 함께합니다, 보도자료.
3) 정부는 첨단전략산업법 등을 통해 반도체, 이차전지, 백신, 디스플레이, 수소, 미래차, 바이오, 인공지능, 방산, 로봇 등을 10대 첨단전략산업으로 정의하고 있다.
4) 예를 들면, 국민성장펀드가 직접투자 및 인프라투융자와 초저리대출을 실행하는 대상 사업으로 우선 검토하는 7건의 메가프로젝트를 발표하였으며, 간접투자방식의 일반 정책성펀드와 국민참여형펀드 운용을 위한 4개의 재정모펀드 운용사를 모펀드 운용 실적이 있는 1조원 규모 이상의 자산운용회사를 대상으로 선정 공고하였다.
5) 한국벤처투자(KVIC)에 의하면 공공모태펀드의 모펀드 단위 실현수익률은 8% 수준의 중위험-중수익 구조를 시현하고 있다.
6) 최근 연기금투자풀을 통해 투자풀과 한국벤처투자(KVIC)가 공동 운영하는 ‘LP 첫걸음 모태펀드’에 모펀드 LP로 참여한 무역보험기금 사례가 이에 해당한다.
7) 예를 들면, 방사선폐기물관리기금의 경우 AUM이 5조원을 상회하여 전담운용기관(OCIO)을 통해 기금이 운용됨에도 불구하고 아직 벤처투자에 대한 별도의 자금 배분은 실행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8) ‘남재우, 2024, 『퇴직연금 적립금 장기추계와 자본시장 영향』, 자본시장연구원 이슈보고서 24-25’ 연구에 의하면 퇴직연금 적립금의 국내주식에 대한 자산배분 비중은 1.6% 미만이다.
9) 예를 들면, 영국은 퇴직연금의 대체투자 활성화를 위해 LTAF(Long-Term Asset Fund) 제도를 도입하였다.
정부는 ‘벤처 4대 강국 도약’이라는 목표하에 공적자금이 견인하는 우리 벤처투자 시장에 민간자금 유입을 확대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을 다방면으로 경주하고 있다. 대통령 공약 사항으로 법정기금 및 퇴직연금의 벤처투자 확대가 제시되었으며, 150조원 규모로 조성되는 국민성장펀드의 상당 부분도 벤처시장에 민간자금 유입을 위한 마중물로 기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2025년 8월 말에 국회를 통과하여 올해 3월부터 시행 예정인 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BDC)를 통해서도 모험자본시장에 개인을 포함한 민간자금의 유입이 기대되는 상황이다. 이러한 정부 정책이 신속하게 추진되고 효과적으로 시행된다면, 적어도 자금의 수급 측면에서는 국내 벤처생태계에 새로운 도약의 발판이 마련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사실 벤처생태계 활성화는 지금까지 과거 모든 정부에서 예외 없이 추진되었던 정책 과제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정부의 시장 활성화 정책은 공공자금이 주도해 온 우리 벤처투자 시장을 민간자금 중심으로 전환하려는 적극적 대응이라는 점에서 차별성을 갖는다. 정부 재정을 기반으로 하는 공공모태펀드1) 중심의 국내 벤처투자 시장을 연기금 및 금융기관, 개인 등으로 투자자 범위를 확대함으로써 실질적으로 민간자금이 주도하는 벤처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한 목적이다. 민간의 참여를 유인하기 위하여 정부 정책의 기본 방향은 벤처투자에 수반되는 위험의 상당 부분은 정부가 흡수하는 대신 성공적 투자로 인한 수익의 대부분은 민간 투자자가 가져가는 구조를 지향한다. 이는 민간의 자발적 참여라는 유인 기제임과 동시에, 지금까지 민간 또는 개인이 접근하기 힘들었던 모험자본시장의 높은 수익성에 접근할 수 있는 효율적 투자 수단의 제공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배경하에 신정부 들어 추진되는 벤처투자 시장에 민간자금 유입을 확대하기 위한 다양한 정부 정책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고, 이러한 정책 방안이 효율적으로 실행되기 위한 정책적 시사점을 정리하고자 한다. 다방면으로 추진되는 정부 정책은 시장의 수급 측면에서 일종의 정책 패키지 차원에서의 상승효과를 기대할 수 있겠으나, 일시에 집중되는 펀드 조성과 경쟁적 운용 환경은 운용사(GP) 입장에서는 양질의 투자 기회를 확보하기 어려운 시장 상황이 가중됨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민간자금 유입이 집중되는 결성 연도의 벤처펀드는 기대보다 저조한 성과로 해산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따라서 최근 벤처투자 확대를 위한 정부 정책에서 요구하는 민간자금의 본원적 속성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책 실행의 중장기 로드맵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벤처투자는 지속적으로 유입되는 양질의 인내자본(patient capital)을 요구한다. 자금의 양과 질 모두에서 어려움을 호소하는 국내 벤처투자 시장이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서는 적정 규모의 자금이 지속적으로 유입되고 효율적으로 배분되는 것이 중요하다.
국민성장펀드: 유연하고 즉각적인 정책 목표 달성
지난해 정부는 국민성장펀드 국민보고대회를 통해 향후 5년간 150조원 이상의 자금을 조성하여 첨단전략산업 및 벤처생태계 전반에 지원하는 계획을 발표하였다.2) 펀드의 재원은 정부 재정과 함께 공·사적 연기금, 금융회사, 국민 참여 자금 등으로 구성되며, 인공지능, 반도체, 바이오, 미래차, 로봇, 수소, 디스플레이, 방산 등 10개 첨단전략산업 및 벤처생태계 전반에 지원될 계획이다. 자금의 집행 방식을 살펴보면 전체 재원의 2/3(100조원)는 인프라투융자나 초저리대출 같은 대출 방식의 정책금융으로 지원되며, 기업에 대한 지분투자나 펀드 출자를 의미하는 투자 방식의 금융 지원이 나머지 50조원 규모다.

이상의 논의를 종합하면, 국민성장펀드는 벤처생태계 활성화라는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가장 우선적으로 집행될 수 있는 즉각적이고 유연한 정책자금으로 기능할 수 있다. 이에 비해 후술하는 법정기금 및 퇴직연금 적립금은 유효한 투자시장이 조성되고 투자 수단(investment vehicle)의 실효성이 확인되어야 본격적으로 시장에 유입될 수 있는 자금 성격이다. 한편 국민성장펀드의 재원 조성 및 투자 실행은 법정기금 및 퇴직연금의 벤처투자 확대 정책과 밀접하게 연계된다. 현재 국민성장펀드는 자금의 집행 측면에서는 직접투자와 간접투자 등으로 구체적인 실행 방안이 속도감 있게 추진되고 있으나4), 재원의 조성에 있어서는 전체 모펀드의 79%를 차지하는 민간자금의 조달 가능성이 구체적이지 않은 상황이다. 국민성장펀드를 통한 법정기금의 벤처투자는 모펀드의 유한책임사원(LP)으로 참여하는 방식과 자펀드의 LP로 출자하는 방식이 모두 고려될 수 있다.
법정기금: 중장기 자산배분의 대체투자 수단
법정기금이란 정부 재정 활동의 일환으로 특정 정책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정부 예산, 자체 사업, 부담금 등을 재원으로 관련법에 따라 조성되는 정책성 기금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는 현재 국민연금기금을 포함하여 67개 법정 기금이 존재하며, 개별 기금의 자산배분계획에 따라 주식 및 채권 같은 전통자산과 함께 벤처투자를 포함한 대체자산 등으로 기금의 여유자금을 운용하고 있다. 법정기금의 여유자금 운용에 있어 벤처투자는 수익률 제고 및 위험 분산을 위한 투자 다변화의 관점으로 실행되는 대체투자의 일환이다. 개별 기금마다 대체투자의 목적과 대체자산의 역할은 상이하나, 주식과 채권 사이에 위치하는 중위험-중수익 구조의 위험조정수익률 제고를 지향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법정기금이 벤처투자 시장에 본격적으로 유입되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인식되는 벤처투자의 고위험-고수익 성향을 중위험-중수익 구조의 투자 수단으로 전환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개별 벤처기업에 대한 직접투자는 그 자체로 초고위험 투자이나, 다수의 벤처기업에 분산투자하는 간접투자 방식의 벤처펀드(자펀드)에 대한 출자는 비교적 통제된 위험의 고위험-고수익 투자로 분류할 수 있다. 이러한 벤처펀드에 분산투자하는 재간접벤처펀드(모펀드)는 적어도 수익률 변동성 측면에서는 중위험-중수익 구조의 대체투자 수단이라 할 수 있다.5) 따라서 이러한 구조의 벤처투자를 실행하는 법정기금이 감내해야 할 실질적 위험은 유동성위험이다. 위험 대비 높은 수익률은 비유동성 프리미엄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모펀드의 존속기간은 10년 이상이며, 대부분 환매가 불가능한 폐쇄형으로 설계된다. 연기금투자풀을 통한 법정기금의 첫 번째 벤처투자 사례로 알려진, 무역보험기금의 벤처투자 역시 한국벤처투자(KVIC)가 운용하는 세컨더리투자 중심의 모펀드에 LP로 참여한 사례다. 일부 연금성 기금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법정기금에 있어 자펀드 단위의 LP 출자는 기금이 감내하기 어려운 위험 수준이므로, 환매 가능한 개방형 재간접벤처펀드(모펀드) 구조가 적합한 투자 수단일 것으로 사료된다.
법정 기금의 유형에 있어, 사업성 기금 대부분은 중소형 규모일 뿐만 아니라 자금의 대부분 또는 전부를 일 년 미만의 단기자금으로 운용하므로, 비유동성 프리미엄을 전제로 하는 대체투자(벤처투자)를 포트폴리오에 편입하기는 어렵다. 벤처투자 시장으로의 유입 가능성이 높은 유형은 금융성 기금이라 할 수 있다. 무보, 신보, 기보 등 다수의 금융성 기금은 운용규모가 큰 대형기금임에도 불구하고 포트폴리오 구성은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편이나, 최근 관리 부처의 변경 등으로 인해 대체투자를 포함한 적극적인 투자 다변화가 추진 중이기 때문이다.6) OCIO 방식 위탁운용을 채택하고 있는 대형기금 중에서 아직 벤처투자에 대한 별도의 자산배분을 하지 않는 기금의 경우 관련법 및 규정 개정을 통해 보다 적극적인 벤처투자 유인이 가능하다.7) 법정기금의 효율적 운용을 위해 설립된 연기금투자풀제도는 최근 대상 기관을 공기업 같은 공공기관으로 확대하면서 운용규모가 60조원을 상회하고 있어, 법정 기금의 벤처시장 유입을 위한 효과적인 정책 수단이 될 수 있다. 연기금투자풀은 이미 벤처투자 확대를 위하여 투자풀의 투자 가능 자산군에 기존 대체자산 외에 별도로 ‘모태펀드와 공동출자하는 벤처투자’ 라는 자산군을 설정하고 있다.
법정기금의 벤처투자 확대 방안의 주안점은 기금 유형별로 상이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벤처펀드에 LP로 참여할 수 있는 대형 기금은 자체적인 자산배분 과정에서 벤처투자의 신규 설정 또는 비중 확대를 유인할 필요가 있으며, 금융성 기금 등은 연기금투자풀을 활용하여 모펀드 LP 같은 재간접벤처펀드 형태의 투자 수단이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 동일한 정책 목적으로 추진되는 퇴직연금 적립금의 벤처시장 유입은 이와는 또 다른 양상이다.
퇴직연금: 점진적으로 확대되는 양질의 인내자본
벤처투자에 적합한 자금 성격은 이른바 양질의 인내자본(patient capital)이다. 장기투자를 전제로 하는 연금자산의 운용이 정확히 이에 부합한다. 우리 벤처생태계 역시 정책펀드를 제외하면 벤처투자의 마중물 역할은 대부분 국민연금기금에 의존해 왔다. 퇴직연금 적립금의 벤처시장 유입이 추진되는 배경이라 할 수 있다. 2025년 말 기준으로 제도 도입 20년이 경과한 우리 퇴직연금제도는 외형적으로는 450조원 규모의 거대 적립금으로 성장하였다. 하지만 적립금 운용 측면에서는 대부분 원리금보장상품(예금)에 편입되어 있으며, 제약적인 운용규제 등으로 인해 2% 초반대의 낮은 수익률이 지적되는 상황이다. 따라서 퇴직연금 적립금의 벤처시장 유입 필요성은 자금의 수요자(벤처생태계)가 아닌 공급자(퇴직연금) 입장에서 수익률 제고를 위한 분산된 위험의 포트폴리오 구축의 관점으로 제시되어야 한다.
퇴직연금은 현재 상장주식 등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 비중 자체가 미미할 뿐만 아니라8), 제도 유형을 막론하고 비상장주식에 대한 직접투자는 금지되어 있어 퇴직연금의 벤처시장 유입은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연금자산의 운용은 기본적으로 외부 전문가를 활용하는 간접투자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비상장주식에 대한 간접 또는 재간접 형태의 집합운용기구(펀드)를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이를 활용하는 방안으로 퇴직연금의 벤처시장 유입 정책이 추진될 수 있다. 즉, 퇴직연금의 벤처투자 확대는 적절한 투자 수단의 제공이 핵심이며, 투자의사결정 주체가 파편화되어 있는 퇴직연금 적립금의 운용 속성을 감안할 때 그 과정은 매우 점진적일 수밖에 없음을 강조한다. 법정기금의 벤처투자 확대같이 지침(IPS) 개정을 통해 전면적으로 추진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뜻이다. 벤처투자에 대한 투자자 신뢰가 확보되고 이러한 점진적 투자 확대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현행 퇴직연금제도의 지배구조와 운용규제를 합리적으로 개편하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퇴직연금은 DB형과 DC형(IRP 포함)의 운용 특성이 매우 다르므로 퇴직연금의 벤처투자 확대 전략 역시 제도유형별로 논의될 필요가 있다. 지배구조 측면에서도 현행 계약형 제도와 현재 도입이 논의되고 있는 기금형 지배구조는 그 양상이 상이하다. DB형 적립금은 기업이 운용성과에 책임을 지고 운용하는 구조로 원칙적으로 벤처투자에 대한 직접적 규제 제한은 없다고 해석할 수 있다. 현행 법령 및 감독규정 상 DB형은 직접 비상장주식 투자만 금지될 뿐 벤처펀드 등 간접투자는 제도적으로 불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DB 적립금의 높은 위험회피 성향을 감안할 때, 앞서 언급한 다양한 형태의 효율적인 재간접 구조의 벤처투자 수단이 적극적으로 제시되어야 한다.
DC형 및 IRP의 경우 개인이 투자위험을 부담하므로 안정성 확보와 투자편의 제고를 동시에 추구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장기적으로는 자금을 집합(pooling)해서 운용하는 기금형 퇴직연금이 도입되어야겠으나, 현행 계약형 지배구조에서도 퇴직연금이 벤처투자가 가능하도록 신규 금융상품의 제시와 관련 제도 개편이 병행되어야 한다. 복수의 벤처펀드를 편입하는 ‘공모형 사모투자재간접펀드’나 최근 도입된 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BDC)의 활용 등이 대표적이다. 해외사례를 보면, TDF 같은 자산배분형펀드의 기초자산(underlying asset)으로 벤처투자를 포함한 비유동성 대체자산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이 관측된다.9) 자산배분형펀드는 디폴트옵션의 주요 적격상품으로 활용된다는 점에서, 이를 통한 퇴직연금의 벤처투자 확대 전략이 보다 주효할 수 있다.
맺음말
정부가 추진 중인 벤처투자 활성화 정책은 법정기금의 벤처투자 확대, 퇴직연금 적립금의 벤처시장 유입, 국민성장펀드를 통한 민간자본 유입 촉진이라는 정책 패키지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 정책은 모두 벤처·혁신기업에 대한 자금 공급 확대를 목표로 하지만, 자금의 성격, 위험 부담 주체, 집행 방식에 있어 본질적인 차이를 갖는다.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모험자본시장 육성의 필요성을 감안하면 다양한 형태의 민간자금을 유입함으로써 벤처생태계의 재도약을 추진하는 정책 방향은 바람직하겠으나, 이러한 정부 정책의 시행은 민간자금의 고유한 속성을 충분히 고려하여 합리적이고 시장친화적인 구조로 추진되어야 한다.
동일한 목적의 정책 조합이 충분한 조율 없이 동시에 공격적으로 집행될 경우, 벤처시장에는 일시적인 자금 공급의 과잉이 발생할 수 있다. 벤처투자의 대상이 되는 우량 벤처기업의 공급은 단기간에 확대되기 어려우므로 제한된 투자 대상에 자금 공급이 집중되면서 기업가치의 급격한 상승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밸류에이션 상승은 초기에는 투자 활성화로 인식되나, 이후 후속 투자 유치 실패나 회수 지연 등으로 이어져 펀드 성과 악화와 자본 비효율로 연결될 수 있다. 정책자금이 풍부해지고 손실 완충 구조가 강화될수록, 벤처캐피탈의 도덕적 해이(moral hazard)의 가능성도 증가한다. 투자 심사 기준 완화, 공공자금에 대한 위험 전가, 관계 기반 투자 증가, 단기 성과 왜곡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부작용을 완화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정책적 관리 장치가 강구되어야 한다. 우선 정책 패키지를 통해 시장에 투입되는 자금 규모를 단계적으로 조절하고 시장 흡수능력에 기반한 집행 관리가 필요하다. 연간 집행 목표를 단순한 금액 기준이 아니라 양질의 투자 기회와 연동하여 유연하게 설정하여야 한다. 운용사 및 투자 품질에 대한 규율 강화가 요구된다. 정책자금 출자 시 성과평가 지표를 단기 집행률이 아닌 장기적인 회수성과와 위험관리 지표 중심으로 설계해야 한다. 회수(exit) 시장에 대한 인프라 구축이 강화되어야 한다. M&A 활성화나 상장제도 개선, 그리고 세컨더리 시장 활성화 등이 병행되지 않으면 일시적 자금 과잉은 시장 병목으로 연결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퇴직연금 적립금은 단기 과열기에 공격적으로 투입하기보다는, 장기투자 자산으로써 점진적으로 확대되는 양질의 인내자본으로 활용하는 전략이 바람직하다. 자금 성격에 맞춘 단계적 접근과 엄격한 거버넌스, 회수 인프라 확충이 병행된다면, 다방면으로 추진되는 이러한 정책 패키지는 우리 벤처생태계의 구조적 도약을 이끄는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 정책펀드의 실행은 모태펀드(Fund of venture funds)라는 재간접 방식이 일반적이며, 한국벤처투자(KVIC)와 농업정책보험금융원 등이 대표적인 공공모태펀드 운영기관이다. 재원의 속성은 상이하나 정책금융기관이 출자하는 한국성장금융(K-Growth)이나 국민연금기금으로 대표되는 공적연금의 재간접 방식 벤처펀드 출자도 시장에서는 정부 정책으로 시행되는 공공모태펀드의 일환으로 인식하고 있다.
2) 금융위원회, 2025. 9. 10, 대한민국 경제 재도약 150조원 국민성장펀드가 함께합니다, 보도자료.
3) 정부는 첨단전략산업법 등을 통해 반도체, 이차전지, 백신, 디스플레이, 수소, 미래차, 바이오, 인공지능, 방산, 로봇 등을 10대 첨단전략산업으로 정의하고 있다.
4) 예를 들면, 국민성장펀드가 직접투자 및 인프라투융자와 초저리대출을 실행하는 대상 사업으로 우선 검토하는 7건의 메가프로젝트를 발표하였으며, 간접투자방식의 일반 정책성펀드와 국민참여형펀드 운용을 위한 4개의 재정모펀드 운용사를 모펀드 운용 실적이 있는 1조원 규모 이상의 자산운용회사를 대상으로 선정 공고하였다.
5) 한국벤처투자(KVIC)에 의하면 공공모태펀드의 모펀드 단위 실현수익률은 8% 수준의 중위험-중수익 구조를 시현하고 있다.
6) 최근 연기금투자풀을 통해 투자풀과 한국벤처투자(KVIC)가 공동 운영하는 ‘LP 첫걸음 모태펀드’에 모펀드 LP로 참여한 무역보험기금 사례가 이에 해당한다.
7) 예를 들면, 방사선폐기물관리기금의 경우 AUM이 5조원을 상회하여 전담운용기관(OCIO)을 통해 기금이 운용됨에도 불구하고 아직 벤처투자에 대한 별도의 자금 배분은 실행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8) ‘남재우, 2024, 『퇴직연금 적립금 장기추계와 자본시장 영향』, 자본시장연구원 이슈보고서 24-25’ 연구에 의하면 퇴직연금 적립금의 국내주식에 대한 자산배분 비중은 1.6% 미만이다.
9) 예를 들면, 영국은 퇴직연금의 대체투자 활성화를 위해 LTAF(Long-Term Asset Fund) 제도를 도입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