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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호 2019.06.04
현대화폐이론(Modern Monetary Theory, 이하 MMT)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아직까지 부정적인 견해가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나, 포웰(Powell) 연준 의장 및 브레이너드(Brainard) 연준 이사가 MMT에 대한 의견을 피력하는 한편, Economist나 Financial Times와 같은 주류 언론이나 글로벌 투자은행들 또한 MMT 도입 가능성에 대한 기사나 보고서를 발표하는 등 주목도가 높아지고 있다.
1. MMT란?
현대화폐이론(Modern Monetary Theory, 이하 MMT)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아직까지 부정적인 견해가 절대 다수1)를 차지하고 있으나, 포웰(Powell) 연준 의장 및 브레이너드(Brainard) 연준 이사가 MMT에 대한 의견을 피력하는 한편, Economist나 Financial Times와 같은 주류 언론이나 글로벌 투자은행들 또한 MMT 도입 가능성에 대한 기사나 보고서를 발표하는 등 주목도가 높아지고 있다.
MMT의 핵심 주장은 수요가 부족한 불경기에 정부 주도의 화폐 창출을 통해 재정지출을 제한 없이 늘려 완전고용을 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2) MMT에 따르면, 명목화폐(fiat currency)의 가치는 정부가 조세를 화폐로 납부하도록 강제함에 따라 발생한다(‘tax drives money’). 정부는 화폐 발행을 통해자국통화 표시 부채를 전액 상환할 수 있는 만큼 채무과다에 따른 파산이 불가능하므로 재정지출 규모를 재정수입에 따라 결정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정부는 재정 건전성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완전 고용과 같은 정책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정 건전성을 강조하는 주류 경제학에서는 재정적자가 정부의 조세수입이나 국채 발행으로 충당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정부지출 확대가 금리인상을 통해 민간투자를 줄이는 구축효과(crowding-out effect)를 일으키는 한편, 미래의 정부부채 상환에 대비해 현재의 소비를 줄이는 리카르도 등가정리(Ricardian equivalence)와 같은 경로를 통해 재정지출의 효과가 제약될 것으로 본다. 이에 반해 MMT에서는 지출 재원 마련을 위해 국채를 발행3)할 필요가 없는 데다, 재정적자로 비정부 부문의 유동성이 늘어나 반드시 민간투자가 구축되는 것은 아니며 금리도 상승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또한, 정부가 발권력으로 부채를 상환할 수 있는 만큼 지금의 재정적자가 미래의 채무상환 부담으로 작용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채무상환의 어려움이 없다고 해서 MMT 이론가들이 재정지출 및 정부부채가 무한정 늘어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기초경제여건을 넘어선 재정지출은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 있는 만큼, 인플레이션이 재정에 대한 규율을 제공하며 재정적자 및 정부부채에 대한 (유일한) 제약으로 작용한다. MMT에 대한 대표적인 비판으로 발권력에 의한 정부지출이 1920년대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 및 2000년대 짐바브웨에서 발생한 하이퍼인플레이션(hyperinflation)을 촉발시켰다는 점이 지적된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MMT 이론가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에서 중앙은행들의 대규모 국채 매입(Quantitative Easing)을 통해 본원통화가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았던 만큼 발권력에 의한 정부지출이 문제의 전부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오히려, 1920년대 독일의 경우 1차 대전 및 과다한 전쟁 배상금에 따른 생산능력 저하가 문제였으며, 2000년대 짐바브웨의 경우에도 토지 개혁 이후 농업 생산성이 급감했던 것이 중요 원인이었다고 본다(Mitchel, Wray and Watts, 2019). 즉, 경제내 유동성 규모에 비해 재화가 적었기 때문에 하이퍼인플레이션이 발생했으며, 생산여력의 급격한 축소로 재화가 부족해진 것이 근본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MMT에서 말하는 발권력에 의한 재정확대는 선진국 중앙은행들의 양적 완화와 어떻게 다른가? 두 정책 모두 본원통화가 확대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그러나 유통시장에서 국채를 매입하는 양적 완화와 달리 발권력에 의한 재정확대는 정부의 기존 적자(국채)를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적자를 유발하는 데다 본원통화 확대가 영구적인 만큼 양적 완화에 비해 경기부양 효과가 크다고 할 수 있다(Turner, 2015). 제도적인 측면에서도 양적 완화의 시기나 규모를 결정하는 주체는 중앙은행인 반면, 발권력에 의한 재정확대는 정부가 주도하게 된다.
2. 왜 인기인가?
MMT가 세간의 관심을 얻게 된 것은 정치적 어젠다 달성을 위해 재정확대를 선호하는 영미의 진보 정치권이 주목한 데서 비롯된다. 2018년 11월 중간선거 이후 미국 민주당의 유력 정치 신인으로 부상한 오카시오-코르테즈(Ocasio-Cortez) 하원의원은 재생 가능한 에너지 사용과 소득 불평등 해소를 위한 그린 뉴딜(Green New Deal) 정책을 제안하고 이를 위한 재정지출 확대의 이론적 근거로 MMT를 언급한 바 있다. 이보다 앞서 2015년 영국 노동당의 코빈(Corbyn) 당수는 주택 및 대중교통에 투자하는 ‘국립투자은행(National Investment Bank)’을 설립하고 해당 은행이 발행한 채권을 영란은행(Bank of England)이 매입하여 자금을 조달하는 ‘인민을 위한 양적 완화’(People’s Quantitative Easing)를 제안한 바 있으며, 재정지출 재원을 발권력으로 조달한다는 점에서 MMT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한편, 경제학계나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최근 세계경제 성장세가 둔화됨에 따라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 경제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본격적인 경기하강 국면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새로운 거시안정화정책 수단이라는 측면에서 MMT에 관심을 갖고 있다. 주요국 중앙은행들의 기준금리 수준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에 비해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는 데다, 금융위기 당시 사용한 양적 완화 정책이 경제성장과 물가를 안정적으로 회복시키는데 일정한 한계를 보였기 때문이다. 유로지역과 일본은 아직까지 마이너스(-) 금리정책을 유지하고 있어 기준금리 인하 여력이 거의 없고, 일본의 경우 장기간의 대규모 자산매입으로 중앙은행이 보유한 국채 비중이 높아 양적 완화조차 임계점에 근접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대부분 2%를 물가목표로 설정했으나 실제 물가수준이 목표를 장기간 하회하면서 중앙은행의 관심이 1980년대와 같은 인플레이션 억제에서 인플레이션 유도(reflation)로 이동하는 등 MMT에 대한 우호적 여건이 조성된 점 역시 MMT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고 있다.
3. 그러면 실제로 현실에 도입될 수 있을까?
MMT 도입은 거시안정화정책에 대한 제도적 체계가 근본적으로 변화하게 됨을 의미한다. 즉, 대부분의 국가에서 정부의 재정정책과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이 독립적으로 이뤄지는 가운데 통화정책이 거시안정화정책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반면, MMT를 도입할 경우 경기순환에서의 총수요 관리를 재정정책이 전담하고 중앙은행은 재정지출을 위해 필요한 자금을 단순 공급하는 기관으로 역할이 축소된다. 따라서 물가안정을 설립 목표로 하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폐기되며, 정부의 재정지출을발권력으로 조달하는 것을 제도적으로 허용해야 한다.4) 이에 따라 비록 물가에 대한 우려가 최근 크게 축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물가안정에 대한 신뢰가 훼손되어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는 점이 MMT의 문제점으로 꾸준히 제기된다.
또한, MMT에서는 재정지출이 인플레이션 우려가 없는 한 무한정 확대될 수 있어 완전고용을 위해 효과적이라고 주장하나, 현실의 재정지출은 다양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우선, 대부분의 민주 국가에서 정부 지출은 의회에 의해 통제되는 만큼 거시안정화정책이 정치적 과정에 종속되면서 왜곡될 위험이 커진다. 브레이너드 이사가 지적한 바와 같이, 의회가 국가 전반의 다양한 영역을 관장하고 있는 가운데 재정지출 대상 및 규모에 대한 의사결정을 효율적이고 적시성 있게 수행하는 데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미국이 경험한 바와 같이 전대미문의 위기 국면에서조차 의회내 정치적 대립이 첨예할 경우 위기에 대응한 신속한 재정확대가 어려울 수 있으며5), 정부의 재정지출이 정치적 논리에 의해 한계기업을 과도하게 지원하는 등 비생산적인 부문에 집중될 수 있다. 결국, 양적 완화의 경기부양 효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경험과 기존연구에서 추정된 재정승수가 매우 낮은 점 등을 감안하면 MMT가 시도된다 해도 충분한 경기부양을 달성하지 못한 채 정부부채만 늘리게 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종합적으로 MMT는 거시경제정책에 대한 제도적 재설정 및 물가안정에 대한 통화당국의 신뢰 상실, 재정정책의 정책시차 및 집행 효율성의 문제와 함께 정부부채 확대에 대한 정치적 반감을 감안하면 현실에 도입될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MMT가 관심을 모으고 있는 최근의 정치경제적 배경을 감안하면 실제 정책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칠 가능성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Economist, 2019). 완전고용 달성을 목표로 재정지출의 제한 없는 확대와 같은 논란이 있는 부분을 제외하면, 새로운 경제위기에 대응하여 제한된 범위 내에서 발권력을 통해 정부지출을 확대하자는 주장6)은 새로운 정책수단의 하나로 꾸준히 제기될 가능성이 크다.
1) 최근(2019.3.13) 시카고대학의 IGM Forum에서 경제학자들을 대상으로 MMT에 동의하는지 여부에 대해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주요 정책제안에 대해 80% 이상이 반대한다고 응답한 바 있다.
2) 이러한 주장은 1930년대 케인즈(John Maynard Keynes)의 이론을 계승한 것으로 MMT는 경제사상사적으로 포스트 케인즈학파(Post Keynesian)로 분류될 수 있다. 한편, 현재 주류경제학으로 평가받는 새 케인즈학파(New Keynesian)는 기존 케인즈의주장에 대한 비판을 수용하여 가계 및 기업의 합리적 기대(rational expectation)와 시장 실패를 초래하는 마찰적 요인(예. 가격및 임금의 경직성)들을 접목함으로써 케인즈 경제학에 이론적 근거를 부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3) MMT에서는 정부가 발권력으로 지출을 조달한다고 전제함에 따라 국채는 적자를 보전하기 위한 용도보다는 시중의 초과 유동성을 흡수하기 위해 발행된다.
4) 실제로 미국의 연방준비은행법, 유럽중앙은행법, 일본은행법 및 한국은행법은 중앙은행의 국채 인수를 금지하고 있다. 다만, 미국,유로지역 및 한국이 국채 인수를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반면, 일본은행법(제34조)은 의회 의결을 통해 의회가 정한 범위 내에서 일본은행이 국채를 인수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5) Bernanke 전 연준의장은 그의 자서전에서 2011년 실시된 제2차 양적완화의 고용창출 효과가 당시 연방정부의 긴축재정에 의해 대부분 상쇄되었다는 주장을 인용하고 있다(Bernanke, 2015).
6) 구체적으로 Turner (2015)는 유효수요가 부족한 상황에서 정부가 중앙은행에 가지고 있는 당좌예금 잔액을 무이자로 무기한 증액하거나, 정부가 발행한 영구채를 중앙은행이 인수한 다음 이자를 정부에 잉여금으로 납부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참고문헌
Bernanke, B., 2015, The Courage to Act: Memoir of a Crisis and Its Aftermath, W.W. Norton & Company: New York.
Economist, 2019. 3. 14, Is Modern Monetary Theory Nutty or Essential?.
Mitchell, W., Wray L.R., Watts, M., 2019, Macroeconomics, Red Globe Press.
Turner, A., 2015, The Case for Monetary Finance: An Essentially Political Issue, IMF Jacques Polak Research Confer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