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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중심지 기능과 증권거래소의 경쟁력
2020-17호 2020.08.03
요약
홍콩보안법 시행으로 홍콩의 금융중심지 지위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데 뉴욕과 런던의 금융중심지 도약 과정에서 알 수 있듯이 금융중심지의 핵심적 인프라는 증권거래소로 홍콩거래소의 경쟁력이 유지되는 한 홍콩의 금융중심지 역할에는 큰 변화가 없을 가능성이 크다. 홍콩거래소는 잠재적 가치가 큰 중국 테크기업의 IPO를 계속 유치하면서 상장기업수의 증가는 물론 거래소 자신의 기업가치도 크게 늘어나면서 세계 1위 거래소로 올라섰다. 이에 비해 경쟁관계에 있는 싱가포르거래소는 상장기업수가 감소하고 거래소의 주가가 하락하면서 싱가포르가 홍콩을 근본적으로 대체하는 데는 한계를 나타냈다. 홍콩거래소와 싱가포르거래소의 경쟁에서 볼 수 있듯이 최근 주요 거래소들은 유니콘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으며 그 결과에 따라 해당 거래소가 위치한 도시나 국가의 금융경쟁력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마찬가지로 국내 금융서비스 역량을 높이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유니콘 기업 유치를 통한 거래소 인프라의 경쟁력 제고가 필요한 상황이다.
홍콩은 그동안 아시아의 금융중심지 지위를 공고히 유지해왔으나 2020년 7월 중국 당국의 홍콩보안법 시행으로 홍콩의 미래에 대한 부정적 전망이 대두되고 있다. 더욱이 미국을 선두로 서방 국가의 제재안이 발표되자 홍콩에 진출한 글로벌 기업들 중에는 홍콩 이외의 지역으로 아시아 지역 본부를 이전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이에 인접 국가들은 브렉시트 여파로 런던을 떠나는 금융기업들을 유치하기 위해 세제혜택 등 유인책을 내거는 유럽 국가들처럼 홍콩 이탈 기업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홍콩의 금융경쟁력은 중국의 관문 역할에 기초하고 있으며 중국 금융시장의 대외 개방이 아직 제한적인 상황에서 홍콩을 근본적으로 대체할 다른 도시를 찾기는 힘들 것이라는 상반된 전망을 내놓고 있다.
그런데 전통적으로 금융중심지라고 하면 증권거래소가 핵심적 기능을 수행하였다고 할 수 있다. 런던과 뉴욕이 금융중심지로 자리를 잡는데 있어서 런던증권거래소(LSE)와 뉴욕증권거래소(NYSE)의 역할은 필수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홍콩의 운명을 가늠하고 역내 아시아 국가의 금융경쟁력을 따지는데 있어서 각국의 대표 증권거래소의 현황과 한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본고에서는 금융중심지와 증권거래소의 역사적 관계를 런던과 뉴욕의 사례를 통해 살펴보고 홍콩거래소(HKEX)를 중심으로 동아시아 거래소의 경쟁력을 비교함으로써 더욱 치열해지는 증권거래소 간 경쟁의 의미를 파악하고자 한다.
런던과 뉴욕의 금융중심지 등극과 증권거래소의 역할1)
흔히 최초의 증권거래소가 17세기 증권시장이 최초로 태동되었던 암스테르담에서 등장했다는 주장이 있지만 보다 전문적 의미2)로 증권거래소를 규정해 보면 최초의 증권거래소는 1724년 서로 뜻을 같이한 증권중개인들이 증권 거래에 대해 행동강령을 제정했던 파리증권거래소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암스테르담이나 파리는 그 후 런던과의 경쟁에서 밀려나 국제적인 금융중심지로 큰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하였다. 후발 주자였던 런던이 금융중심지로 부상한 데는 18세기말과 19세기초에 걸쳐 유럽 대륙의 잇따른 전쟁과 정정불안으로 상당수 금융인들이 런던으로 몰려온 것이 큰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덕분에 1801년에야 근대적인 형태를 갖추었던 런던증권거래소는 선발 주자였던 암스테르담과 파리의 증권거래소를 손쉽게 제칠 수 있었다.
한편 1792년 ‘버튼우드 합의서(Buttonwood Agreement)’까지 그 기원이 거슬러 올라가는 뉴욕증권거래소도 19세기 중엽까지는 세계 금융은 물론 미국 안에서도 금융중심지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였다. 당시 미국의 금융중심지는 초기 중앙은행인 미합중국은행(Bank of the United States)이 소재한 필라델피아였으며 뉴욕증권거래소는 필라델피아증권거래소의 경쟁상대가 되지 못하였다. 뉴욕증권거래소가 필라델피아증권거래소와의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는 1836년 제2합중국은행(Second Bank of the United States)이 폐지된 것을 빼놓을 수 없겠으나 뉴욕 내 증권거래소 간 통합을 통한 자구노력, 대서양 횡단 전신케이블의 부설로 인한 뉴욕의 정보 우위도 주효한 요인으로 손꼽히고 있다.
그런데 뉴욕과 런던의 세계 금융중심지 지위가 확고하게 굳어진 데는 뉴욕증권거래소와 런던증권거래소로부터 시작된 대대적 금융규제완화가 공통적으로 존재하였다. 뉴욕증권거래소는 미국 대표 기업 주식의 상장과 유통을 독점하다시피 하였는데 특히 폐쇄적 회원제로 운영되다 보니 비회원과의 거래에 대한 강제적인 최소수수료(고정 커미션) 설정이나 뉴욕증권거래소 상장주식의 장외거래 금지는 신생 기업의 자본시장 접근을 제약하고 기관투자자의 거래비용을 높이는 매우 비효율적인 규제였다. 결국 1975년 5월 1일 뉴욕증권거래소의 최소수수료는 폐지되었는데 이를 두고 ‘월스트리트 메이데이 개혁’으로 부르며 이때부터 미국의 증권거래가 본격적인 경쟁체제로 접어들었다. 특히 컴퓨터의 도입으로 거래비용이 급격히 하락하면서 미국 증권시장의 효율성은 크게 향상되었다.
런던증권거래소의 경우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높은 수준의 공적 규제를 받고 있었기에 폐쇄적 회원제와 최소수수료가 1975년 미국의 개혁 조치 이후에도 한동안 유지되었다. 그러나 유럽 경제의 부흥으로 런던이 국제 금융거래의 중심지로 다시 부상하면서 후진적인 자본시장 제도와 높은 거래비용은 금융서비스 확장의 중대한 걸림돌이 되었다. 결국 1986년 10월 27일 ‘금융 빅뱅 개혁’으로 불리는 대대적 금융규제 완화 조치를 통해 런던증권거래소의 최소수수료가 폐지되고 동시에 폐쇄적 회원제가 외부에 개방되면서 런던은 명실상부한 국제 금융중심지로 발돋음할 수 있었다. 뉴욕증권거래소와 런던증권거래소의 규제개혁의 공통점은 기존 기득권 세력에 절대적으로 유리했던 증권거래 환경을 컴퓨터의 도입과 기관투자자 및 외국투자자의 등장이라는 변화를 반영하여 개편하였다는 점으로 두 개혁이 없었다면 두 도시의 금융중심지 기능 수행은 제한적이었을 것이다. 두 개혁 조치는 금융중심지와 증권거래소의 관련성을 확인해주는 사건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홍콩거래소의 굳건한 경쟁력
금융중심지와 증권거래소의 유기적 관계를 고려하여 홍콩거래소의 최근 상황을 살펴보면 홍콩보안법의 시행과 미ㆍ중 갈등 심화에도 불구하고 홍콩거래소의 경쟁력은 더 강해지고 있다. 양적 측면에서 홍콩거래소의 상장기업수는 가파르게 증가하면서 한국거래소(KRX)를 추월하여 일본거래소(JPX)와 격차를 줄이고 있다. 특히 홍콩의 금융중심지 기능을 대체할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던 싱가포르의 경우 싱가포르거래소(SGX)의 상장기업수가 계속 감소하면서 홍콩거래소와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전체 상장기업의 시가총액도 홍콩거래소는 2010년대 후반부터 급격히 증가하면서 정체상태에 머물고 있는 싱가포르거래소와 차이가 커지고 있다.
홍콩거래소의 성장은 무엇보다 선진자본시장에 접근하려는 중국 테크기업의 유입3)이 계속 이어지기 때문인데 2020년 상반기 IPO 실적은 홍콩거래소가 112억 달러로 53억 달러의 뉴욕증권거래소를 제쳤고 170억 달러의 나스닥 뒤를 쫓고 있다. 2020년 하반기는 초대형 IPO가 될 알리바바의 모바일 결제 자회사인 앤트테크놀로지의 상하이와 홍콩 증시에 복수상장이 예정되어 있어 홍콩거래소의 IPO 실적이 나스닥을 추월할 것으로 전망된다.
상장기업의 수나 전체 시가총액뿐만 아니라 홍콩거래소의 경쟁력 개선은 탈상호화(demutualized)를 거쳐 영리기업으로 전환한 글로벌 거래소의 시가총액 비교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홍콩거래소 자신의 시가총액은 2020년 7월 600억 달러를 넘어서면서 시카고의 파생상품거래소 CME 그룹을 제치고 세계 1위 거래소가 되었다. 2020년 초부터의 주가 변동에서도 홍콩거래소 주가는 39.5%가 상승하여 나스닥의 18.9%를 크게 앞서며 42.5%의 일본거래소 다음으로 좋은 성과를 보이고 있다. 이에 비해 1위 시가총액 거래소를 내준 CME는 -17.8%, 싱가포르거래소는 -6.3%로 연초 대비 주가가 하락하였다.
글로벌 거래소 간 경쟁이 주는 시사점
제반 상황을 종합해볼 때 홍콩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증가하고, 실제로 일부 글로벌 기업의 이탈이 가시화되고 있음에도 금융중심지 본연의 기능은 홍콩거래소의 위상이 유지되는 한 큰 변화가 나타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오히려 유망한 중국 테크기업의 홍콩거래소 상장이 증가하면서 홍콩거래소의 경쟁력은 더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중국 본토의 양대 거래소인 상하이증권거래소(SSE)와 선전증권거래소(SZSE)가 IPO 규제를 완화하며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기에 중국 테크기업의 홍콩거래소의 상장이 감소할 가능성이 있지만 아직까지 유력 테크기업들은 외부 자본의 접근이 자유로운 홍콩거래소의 단독 상장 또는 본토와 홍콩의 복수상장을 선호하고 있다. 홍콩거래소는 이러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공격적인 경영전략을 취하고 있다. 비록 실패하였지만 2019년에는 유럽의 대표 증권거래소인 런던증권거래소를 인수하여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하려고 하였다. 2020년 5월말에는 세계 최대 지수사업자(index provider)인 MSCI와 37개의 주가지수에 대한 파생상품 기초지수 사용에 합의했는데 이는 싱가포르거래소가 23년이나 유지해오던 서비스로 홍콩거래소의 승리가 보도되자 싱가포르거래소의 주가는 당일 12%나 급락하였다.
홍콩거래소뿐만 아니라 주요 글로벌 거래소는 경쟁력 강화를 위해 공세적으로 테크기업의 유치에 나서고 있으며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인수합병에도 적극적이다. 나스닥은 2019년부터 IPO 실적에서 7년 만에 뉴욕증권거래소를 앞질렀으며, 홍콩거래소, 싱가포르거래소, 상하이거래소(STAR market)는 유니콘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앞다투어 상장기업의 1주 1의결권 조건을 완화하였으며 동시에 이미 미국에 상장된 중국 테크기업의 2차상장을 적극 유도하고 있다. 런던증권거래소는 정보사업부문을 키우기 위해 금융시장정보회사인 Refinitiv의 인수 협상을 마치고 당국의 최종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결과적으로 유니콘 기업을 더 유치하고 신규 업무영역을 개척하기 위한 세계 주요 거래소들의 경쟁은 홍콩거래소와 싱가포르거래소의 엇갈린 성과에서 볼 수 있듯이 점점 더 치열해질 가능성이 크다. 또한 거래소 간 경쟁의 승자와 패자는 해당 거래소가 위치한 도시나 국가의 금융경쟁력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며 한국도 예외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거래소 간 유니콘 기업 유치 경쟁에 대비한 국내 전략은 구체화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국내 거래소 인프라 발전 전략 마련을 위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하겠다.
1) 런던과 뉴욕의 금융중심지 기원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남길남, 2017, 세계 거래소 산업의 변화와 특징, 자본시장연구원 조사보고서 17-01’을 참조한다.
2) 학술적으로는 전문화된 증권중개인들이 공통의 규칙과 감독을 받아가며 폐쇄적 시스템을 통해 증권의 매도와 매수를 벌이는 시장으로 정의할 수 있다(남길남, 2017).
3) 홍콩거래소의 중국 기업 시가총액 비중은 2000년 27%에서 2020년 6월말 77.8%로 급증하였다.
그런데 전통적으로 금융중심지라고 하면 증권거래소가 핵심적 기능을 수행하였다고 할 수 있다. 런던과 뉴욕이 금융중심지로 자리를 잡는데 있어서 런던증권거래소(LSE)와 뉴욕증권거래소(NYSE)의 역할은 필수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홍콩의 운명을 가늠하고 역내 아시아 국가의 금융경쟁력을 따지는데 있어서 각국의 대표 증권거래소의 현황과 한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본고에서는 금융중심지와 증권거래소의 역사적 관계를 런던과 뉴욕의 사례를 통해 살펴보고 홍콩거래소(HKEX)를 중심으로 동아시아 거래소의 경쟁력을 비교함으로써 더욱 치열해지는 증권거래소 간 경쟁의 의미를 파악하고자 한다.
런던과 뉴욕의 금융중심지 등극과 증권거래소의 역할1)
흔히 최초의 증권거래소가 17세기 증권시장이 최초로 태동되었던 암스테르담에서 등장했다는 주장이 있지만 보다 전문적 의미2)로 증권거래소를 규정해 보면 최초의 증권거래소는 1724년 서로 뜻을 같이한 증권중개인들이 증권 거래에 대해 행동강령을 제정했던 파리증권거래소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암스테르담이나 파리는 그 후 런던과의 경쟁에서 밀려나 국제적인 금융중심지로 큰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하였다. 후발 주자였던 런던이 금융중심지로 부상한 데는 18세기말과 19세기초에 걸쳐 유럽 대륙의 잇따른 전쟁과 정정불안으로 상당수 금융인들이 런던으로 몰려온 것이 큰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덕분에 1801년에야 근대적인 형태를 갖추었던 런던증권거래소는 선발 주자였던 암스테르담과 파리의 증권거래소를 손쉽게 제칠 수 있었다.
한편 1792년 ‘버튼우드 합의서(Buttonwood Agreement)’까지 그 기원이 거슬러 올라가는 뉴욕증권거래소도 19세기 중엽까지는 세계 금융은 물론 미국 안에서도 금융중심지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였다. 당시 미국의 금융중심지는 초기 중앙은행인 미합중국은행(Bank of the United States)이 소재한 필라델피아였으며 뉴욕증권거래소는 필라델피아증권거래소의 경쟁상대가 되지 못하였다. 뉴욕증권거래소가 필라델피아증권거래소와의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는 1836년 제2합중국은행(Second Bank of the United States)이 폐지된 것을 빼놓을 수 없겠으나 뉴욕 내 증권거래소 간 통합을 통한 자구노력, 대서양 횡단 전신케이블의 부설로 인한 뉴욕의 정보 우위도 주효한 요인으로 손꼽히고 있다.
그런데 뉴욕과 런던의 세계 금융중심지 지위가 확고하게 굳어진 데는 뉴욕증권거래소와 런던증권거래소로부터 시작된 대대적 금융규제완화가 공통적으로 존재하였다. 뉴욕증권거래소는 미국 대표 기업 주식의 상장과 유통을 독점하다시피 하였는데 특히 폐쇄적 회원제로 운영되다 보니 비회원과의 거래에 대한 강제적인 최소수수료(고정 커미션) 설정이나 뉴욕증권거래소 상장주식의 장외거래 금지는 신생 기업의 자본시장 접근을 제약하고 기관투자자의 거래비용을 높이는 매우 비효율적인 규제였다. 결국 1975년 5월 1일 뉴욕증권거래소의 최소수수료는 폐지되었는데 이를 두고 ‘월스트리트 메이데이 개혁’으로 부르며 이때부터 미국의 증권거래가 본격적인 경쟁체제로 접어들었다. 특히 컴퓨터의 도입으로 거래비용이 급격히 하락하면서 미국 증권시장의 효율성은 크게 향상되었다.
런던증권거래소의 경우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높은 수준의 공적 규제를 받고 있었기에 폐쇄적 회원제와 최소수수료가 1975년 미국의 개혁 조치 이후에도 한동안 유지되었다. 그러나 유럽 경제의 부흥으로 런던이 국제 금융거래의 중심지로 다시 부상하면서 후진적인 자본시장 제도와 높은 거래비용은 금융서비스 확장의 중대한 걸림돌이 되었다. 결국 1986년 10월 27일 ‘금융 빅뱅 개혁’으로 불리는 대대적 금융규제 완화 조치를 통해 런던증권거래소의 최소수수료가 폐지되고 동시에 폐쇄적 회원제가 외부에 개방되면서 런던은 명실상부한 국제 금융중심지로 발돋음할 수 있었다. 뉴욕증권거래소와 런던증권거래소의 규제개혁의 공통점은 기존 기득권 세력에 절대적으로 유리했던 증권거래 환경을 컴퓨터의 도입과 기관투자자 및 외국투자자의 등장이라는 변화를 반영하여 개편하였다는 점으로 두 개혁이 없었다면 두 도시의 금융중심지 기능 수행은 제한적이었을 것이다. 두 개혁 조치는 금융중심지와 증권거래소의 관련성을 확인해주는 사건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홍콩거래소의 굳건한 경쟁력
금융중심지와 증권거래소의 유기적 관계를 고려하여 홍콩거래소의 최근 상황을 살펴보면 홍콩보안법의 시행과 미ㆍ중 갈등 심화에도 불구하고 홍콩거래소의 경쟁력은 더 강해지고 있다. 양적 측면에서 홍콩거래소의 상장기업수는 가파르게 증가하면서 한국거래소(KRX)를 추월하여 일본거래소(JPX)와 격차를 줄이고 있다. 특히 홍콩의 금융중심지 기능을 대체할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던 싱가포르의 경우 싱가포르거래소(SGX)의 상장기업수가 계속 감소하면서 홍콩거래소와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전체 상장기업의 시가총액도 홍콩거래소는 2010년대 후반부터 급격히 증가하면서 정체상태에 머물고 있는 싱가포르거래소와 차이가 커지고 있다.
상장기업의 수나 전체 시가총액뿐만 아니라 홍콩거래소의 경쟁력 개선은 탈상호화(demutualized)를 거쳐 영리기업으로 전환한 글로벌 거래소의 시가총액 비교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홍콩거래소 자신의 시가총액은 2020년 7월 600억 달러를 넘어서면서 시카고의 파생상품거래소 CME 그룹을 제치고 세계 1위 거래소가 되었다. 2020년 초부터의 주가 변동에서도 홍콩거래소 주가는 39.5%가 상승하여 나스닥의 18.9%를 크게 앞서며 42.5%의 일본거래소 다음으로 좋은 성과를 보이고 있다. 이에 비해 1위 시가총액 거래소를 내준 CME는 -17.8%, 싱가포르거래소는 -6.3%로 연초 대비 주가가 하락하였다.
제반 상황을 종합해볼 때 홍콩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증가하고, 실제로 일부 글로벌 기업의 이탈이 가시화되고 있음에도 금융중심지 본연의 기능은 홍콩거래소의 위상이 유지되는 한 큰 변화가 나타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오히려 유망한 중국 테크기업의 홍콩거래소 상장이 증가하면서 홍콩거래소의 경쟁력은 더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중국 본토의 양대 거래소인 상하이증권거래소(SSE)와 선전증권거래소(SZSE)가 IPO 규제를 완화하며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기에 중국 테크기업의 홍콩거래소의 상장이 감소할 가능성이 있지만 아직까지 유력 테크기업들은 외부 자본의 접근이 자유로운 홍콩거래소의 단독 상장 또는 본토와 홍콩의 복수상장을 선호하고 있다. 홍콩거래소는 이러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공격적인 경영전략을 취하고 있다. 비록 실패하였지만 2019년에는 유럽의 대표 증권거래소인 런던증권거래소를 인수하여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하려고 하였다. 2020년 5월말에는 세계 최대 지수사업자(index provider)인 MSCI와 37개의 주가지수에 대한 파생상품 기초지수 사용에 합의했는데 이는 싱가포르거래소가 23년이나 유지해오던 서비스로 홍콩거래소의 승리가 보도되자 싱가포르거래소의 주가는 당일 12%나 급락하였다.
홍콩거래소뿐만 아니라 주요 글로벌 거래소는 경쟁력 강화를 위해 공세적으로 테크기업의 유치에 나서고 있으며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인수합병에도 적극적이다. 나스닥은 2019년부터 IPO 실적에서 7년 만에 뉴욕증권거래소를 앞질렀으며, 홍콩거래소, 싱가포르거래소, 상하이거래소(STAR market)는 유니콘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앞다투어 상장기업의 1주 1의결권 조건을 완화하였으며 동시에 이미 미국에 상장된 중국 테크기업의 2차상장을 적극 유도하고 있다. 런던증권거래소는 정보사업부문을 키우기 위해 금융시장정보회사인 Refinitiv의 인수 협상을 마치고 당국의 최종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결과적으로 유니콘 기업을 더 유치하고 신규 업무영역을 개척하기 위한 세계 주요 거래소들의 경쟁은 홍콩거래소와 싱가포르거래소의 엇갈린 성과에서 볼 수 있듯이 점점 더 치열해질 가능성이 크다. 또한 거래소 간 경쟁의 승자와 패자는 해당 거래소가 위치한 도시나 국가의 금융경쟁력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며 한국도 예외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거래소 간 유니콘 기업 유치 경쟁에 대비한 국내 전략은 구체화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국내 거래소 인프라 발전 전략 마련을 위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하겠다.
1) 런던과 뉴욕의 금융중심지 기원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남길남, 2017, 세계 거래소 산업의 변화와 특징, 자본시장연구원 조사보고서 17-01’을 참조한다.
2) 학술적으로는 전문화된 증권중개인들이 공통의 규칙과 감독을 받아가며 폐쇄적 시스템을 통해 증권의 매도와 매수를 벌이는 시장으로 정의할 수 있다(남길남, 2017).
3) 홍콩거래소의 중국 기업 시가총액 비중은 2000년 27%에서 2020년 6월말 77.8%로 급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