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시대의 금융산업 중장기 발전전략 | 자본시장포커스 | 발간물 | 자본시장연구원
ENG

발간물

자본시장포커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금융산업 중장기 발전전략
2022 04/04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금융산업 중장기 발전전략 2022-07호 PDF
요약
과거 한국 금융은 중후장대형 산업에 대한 자금 지원에 치중하였고, 대면 중심의 금융서비스를 제공해왔기 때문에 한국 금융이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려면 중장기 발전전략을 수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표적으로 2003년 도입한 동북아 금융허브 전략과 2009년부터 시행ㆍ발전해 온 금융중심지 제도를 개편하여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디지털 금융중심지 전략을 재수립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한국 금융산업이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할 수 있도록 세 가지 중장기 발전전략을 제시한다. 첫째, IP(지식재산권) 금융과 자본시장 중심 기업구조조정 활성화 등을 통해 창업-성장-회수의 혁신기업 성장 단계에서 모험자본 공급을 확대해야 한다. 둘째, 핀테크 활성화를 위해 금융규제를 네거티브 방식과 원칙 중심으로 개선하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징벌적 과징금 도입 등 행정제재를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셋째, 4차 산업혁명의 꽃인 거대 데이터댐을 구축하고 이를 과감히 개방하는 등 데이터 인프라 혁신이 필요하다.
4차 산업혁명과 금융의 역할
 

한국 경제가 저성장 기조를 탈피하기 위해서는 4차 산업혁명 가속화를 통해 잠재성장률을 높여야 한다. 잠재성장률은 노동, 자본, 총요소생산성 등 세 가지 요인으로 구성할 수 있는데, 저출산과 고령화가 지속되고 주력 산업이 성숙화됨에 따라 더 이상 노동과 자본의 투입 증가를 기대하기 어렵다. 즉 기술 혁신과 제도 효율화를 통해 총요소생산성의 기여도를 높이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1) 4차 산업혁명은 상당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새로운 산업의 출현을 가속화시키기 때문에 4차 산업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끈다면 총요소생산성의 기여도 증가를 통해 잠재성장률 제고에 기여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을 성공적으로 맞이하려면 무엇보다 금융의 역할이 중요하다. 첫째, 우수한 기술력을 가진 창업가가 아이디어를 충분히 실현하려면, 창업-성장-회수에 이르는 혁신기업 생애주기 전 단계에서 모험자본과 인내자본을 충분히 공급받을 수 있어야 한다. 금융은 자금중개 기능을 통해 보다 생산적인 분야로 자원을 배분하는 역할을 수행할 뿐 아니라, 다양한 유형의 수익구조 제시를 통해 금융혁신과 위험관리를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역할을 한다. 둘째, 금융산업 자체의 디지털 혁신을 통해 보다 많은 이용자가 편리하고 저렴하게 금융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인공지능, 블록체인, 클라우드, 빅데이터 기술을 활용해 로보어드바이저, 취약계층 대안 신용평가, 고객 맞춤형 보험상품 등 핀테크 혁신을 선도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셋째, 데이터 인프라 혁신을 유도하는 것도 금융의 중요한 역할이다. 미래 금융산업은 유인부합적 인센티브 설계를 통해 데이터를 충분히 확보하고, 이종 데이터를 결합하고 활용할 수 있는 인프라를 제공하는 역할이 필요하다.    
 
혁신벤처기업에 대한 모험자본 공급, 핀테크 혁신, 데이터 인프라 혁신 등을 추진하려면 한국 금융산업의 비전과 전략을 재설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과거 한국 금융은 전기전자, 자동차, 철강화학, 조선 등 중후장대형 산업의 자금 공급에 치중해왔고, 대면 중심의 금융서비스를 제공해왔기 때문에 한국 금융이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려면 중장기 발전전략을 수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표적으로 2003년 금융산업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육성하기 위해 만든 동북아 금융허브 전략과 2009년 시행되어 발전해 온 금융중심지 제도를 개편하여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디지털 금융중심지 전략을 재수립할 필요가 있다. 
 
이에 본고에서는 과거 동북아 금융중심지 전략을 평가하고, 디지털 금융중심지 전략으로 재수립할 필요성을 제시한다. 더불어 한국 금융산업의 중장기 발전전략으로 첫째 혁신벤처기업에 대한 모험자본 공급 확대, 둘째 금융규제 개선을 통한 핀테크 활성화, 셋째 데이터 인프라 혁신을 제안한다.  
 
 
과거 동북아 금융중심지 전략 평가
  
2003년 정부는 금융산업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육성하기 위해 동북아 금융허브 추진전략을 발표했다. 2007년 말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금융시장을 선진화함으로써 국민경제 발전에 기여하는 것을 목표로 「금융중심지의 조성과 발전에 관한 법률(이하 금융중심지법)」을 제정하였다. 이에 기초해 정부는 2009년 초 서울과 부산을 금융중심지로 지정했으며, 올해까지 총 5차례 금융중심지 기본계획을 수립하여 금융산업 경쟁력 강화를 도모했다. 금융인프라 선진화, 자본시장 고도화, 금융산업의 국제역량 제고, 금융시스템의 국제정합성 제고 등이 대표적인 금융중심지 추진 정책에 포함된다. 2009년부터 금융중심지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한 이후 견고한 실물경제 성장에 힘입어 외국인 투자자 규모가 늘고 자본시장을 통한 모험자본 공급이 증가하는 등 한국 금융산업은 양적 성장을 이루었다. 이 같은 노력에 힘입어 서울의 국제금융센터지수(GFCI) 순위는 2009년 9월 세계 35위에서 2022년 3월 현재 세계 12위로 상승했다. 부산의 GFCI 순위는 2014년 발표 이후 30~50위권을 기록했으며, 2022년 3월 현재 세계 30위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 10여 년간 금융중심지 정책 추진 등에 힘입어 한국 금융산업이 양적 성장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금융산업의 국제 경쟁력과 금융 인프라 수준 등 질적 측면에서는 다소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다. 아시아 지역에서 홍콩, 싱가포르, 도쿄 등 경쟁 국가의 금융중심지 경쟁력 또한 높은 수준을 유지해왔으며 중국 정부의 적극적인 금융산업 활성화 정책에 힘입어 상하이, 베이징, 선전 등 중국 내 주요 도시의 금융경쟁력이 크게 향상되었다. 2022년 3월 현재 한국의 GFCI 순위는 12위를 기록하고 있으나, 홍콩(3위), 상하이(4위), 싱가포르(6위), 베이징(8위), 도쿄(9위), 선전(10위) 등 아시아 경쟁 도시의 국제 금융중심지 순위는 3~10위로 한국보다 높다(<표 1> 참조). 아시아 주요 도시 간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서울과 부산이 동북아 국제 금융중심지로 앞장서지 못하는 데에는 타 도시국가 대비 높은 세율, 경직적인 노동규제, 그리고 강도 높은 금융규제 등을 주요 원인으로 꼽아왔다. 그뿐 아니라 한국 주요 도시가 외국인 투자 기관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기에는 언어, 문화, 교육, 생활 인프라 전반이 다소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았기 때문에 물리적 개념의 인바운드(inbound), 아웃바운드(outbound) 전략만으로는 동북아 금융중심지로 도약하기 어렵다. 
 

 
과거 한국 주요 도시가 아시아 금융중심지로서 선도적인 역할을 충분히 수행했다고 보기 어렵지만, 미래의 전망은 밝다. 우선 미래의 금융산업이 비대면 디지털 플랫폼 기반으로 빠르게 변화하면서, 세계 최고의 ICT 기술력과 우수 인재를 보유한 한국의 잠재력이 매우 크다. 핀테크 혁신을 통해 디지털 금융중심지 전략을 추진해온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베이징, 선전 등의 최근 금융중심지 순위가 상승한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다음으로 서울, 부산 등과 경쟁 관계에 있는 홍콩, 싱가포르, 베이징,도쿄 등의 금융중심지 경쟁력이 다소 약화되고 있는 점도 한국에는 기회가 될 수 있다. 2022년 3월 현재 서울, 부산의 GFCI 점수는 각각 705점, 673점으로 최근 3년간 상승 추세에 있으나 홍콩, 싱가포르, 베이징, 도쿄 등은 708~715점으로 하락 추세를 보이며 서울과의 격차가 줄었다(<그림 1> 참조). 2009년 전후로 서울과 이들 국가와의 GFCI 점수 격차가 100~200점 이상 벌어졌던 것과 비교하면, 최근 서울의 금융중심지 경쟁력은 상대적으로 강화되었다. 중국은 경제성장률이 둔화되고 있고 홍콩은 중국과의 정치적 갈등이 확대되고 있으며, 싱가포르는 매우 협소한 도시국가의 한계를 가지고 일본은 고령화로 디지털 전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반면 한국은 인공지능, 블록체인, 빅데이터, 바이오 등 다양한 혁신성장 엔진을 보유하고 있어 강점이 많다. 
 

 
 
전략 1: 혁신벤처기업에 대한 모험자본 공급 확대 
 
한국 금융산업이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려면 첫째, 혁신벤처기업들에게 모험자본을 충분히 공급해야 한다. 저금리 기조 속에서 유동성이 늘어났지만, 창업가들은 여전히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혁신기술 개발이 진행 중인 중후기 단계의 기업들은 대규모 자금이 필요하나, 이때 자금 공급이 수월하지 않아 기술 개발의 마지막 단계에서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을 넘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 혁신벤처기업들은 특허 등 무형자산 보유 비중이 높은데, 무형자산을 담보로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운 것도 죽음의 계곡을 넘지 못하는 장애요인이다. 실제 2020년 중소벤처기업부 통계에 의하면 국내 창업기업의 5년 생존율은 29%로 OECD 평균 생존율인 42%보다 13%p나 낮으며, 2021년 12월 기준 한국의 유니콘 기업 숫자는 18개로 미국(489개), 중국(171개), 인도(53개), 영국(39개) 등에 뒤떨어진다.2) 

창조적 파괴를 추구하는 혁신가가 마음껏 아이디어를 실현하려면 창업-성장-회수 전 단계에서 모험자본 공급을 확대해야 한다. 우선 창업 초기에는 액셀러레이터와 엔젤투자를 활성화하고, 기업형 벤처투자회사(CVC) 제도를 실효적으로 개선하여 창업기업에게 충분한 자금을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 혁신기업 중후기 단계에는 대규모 자금을 장기간 공급할 수 있도록 IP(지식재산권) 금융을 활성화하고, 미국과 유럽의 벤처기업 생태계에서 성공적으로 자리매김한 실리콘밸리은행 사업모델을 검토하여 벤처지분투자와 벤처대출의 포트폴리오 자금공급 전략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회수 단계에는 IPO와 M&A의 유인을 제고시키고, 고수익 회사채시장 육성을 통해 자본시장 중심 기업구조조정을 활성화시키는 정책이 필요하다. 
 
 
전략 2: 금융규제 개선을 통한 핀테크 활성화
 
둘째, 한국 금융산업이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려면 금융규제 개선을 통해 핀테크 활성화를 추진해야 한다. 핀테크는 부(富)의 수준, 나이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저렴한 비용으로 편리한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 4차 산업혁명을 대표하는 혁신산업으로 발전할 전망이다. 한국 정부도 핀테크 육성을 목표로 2018년 금융혁신특별법을 제정하고, 이를 기초로 금융규제 샌드박스를 도입하여 다양한 유형의 혁신금융서비스의 출현을 유도해왔다. 금융당국의 핀테크 활성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국 주요 도시의 핀테크 생태계 수준은 주요국 대비 높지 않다. 글로벌 리서치사 핀덱서블(findexable)의 조사에 따르면 2021년 서울의 핀테크 생태계 순위는 31위로 아시아 경쟁도시인 홍콩(9위), 싱가포르(10위), 뉴델리(13위), 베이징(17위), 도쿄(19위)에 비해 다소 낮다. 한국의 금융규제는 포지티브(Positive) 방식과 규칙(Rule) 중심으로 기술되어 있고, 인허가, 영업행위, 소비자보호 관련 규제가 엄격하고 촘촘히 설계되어 있어 혁신적인 금융서비스가 출현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는 지적이 많다. 또한 모범규준, 행정지도 등 숨은 규제의 영향력이 커서 금융규제의 일관성과 투명성이 다소 부족하며, 주요 금융업권 규제가 대면 중심으로 규율된 점도 핀테크 활성화의 장애요인으로 꼽을 수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핀테크를 주력 산업으로 육성하려면 금융규제를 장기적으로 포지티브(Positive) 방식에서 네거티브(Negative) 방식으로 전환하고, 규칙(Rule) 중심의 기술을 원칙(Principle) 중심으로 개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때 네거티브 방식과 원칙 중심 규제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금융 규제를 위반한 경우 엄중한 제재를 부과할 수 있어야 한다. 즉, 해외 선진국처럼 불완전판매, 불공정거래 등 주요 규제를 위반한 경우 금융당국이 징벌적 과징금을 부과하는 등 행정제재 강화가 동시에 추진되어야 네거티브 방식과 원칙 중심 규제가 원활히 작동할 수 있다. 또한 금융규제의 투명성과 일관성을 제고하기 위해 규제 입증책임제를 활성화하고, 규제 편익과 비용 분석이 포함된 규제 백서를 홈페이지 등을 통해 공개함으로써 시장 참여자 및 민간 전문가들과의 소통을 확대해야 한다. 더불어 경제 전반의 비대면 디지털 전환에 맞추어, 대면 중심으로 규율된 금융업법 규제를 비대면 환경에 맞게 개선하고 인공지능, 블록체인, 빅데이터 기술을 활용한 혁신 핀테크 서비스의 신속한 출현을 위해 금융규제 샌드박스를 보다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전략 3: 데이터 인프라 혁신
 
셋째, 4차 산업혁명의 기반을 마련하려면 누구나 데이터를 충분히 확보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올해 초 금융회사를 중심으로 마이데이터 서비스가 시작되어, 금융소비자가 여러 기관에 흩어진 금융정보를 한곳에 모아 관리하는 것이 가능해졌으나, 의료, 교통, 통신, 유통, 에너지 등 다양한 영역에 흩어진 정보를 한곳에 모아 결합하고 활용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많다. 예컨대 소규모 핀테크 회사가 개인의 보건ㆍ의료 정보를 수집하여 금융데이터와 결합한 후에 고객 맞춤형 보험상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것은 쉽지 않다. 또한 일부 대형 금융기관의 경우 고객 관련 가명정보의 공개를 꺼리는 경우가 많아, 다수의 핀테크 회사들은 핵심 데이터를 이용하는데 제약이 있다. 최근 민간을 중심으로 데이터 거래소가 운영되고 있지만, 보유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고 핵심 데이터의 경우 데이터 구매 가격이 비싸 소규모 핀테크 회사들이 해당 데이터를 활용하는데 어려움이 많다.
 
4차 산업혁명의 꽃은 데이터댐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간과 공공 영역에서 생성한 수많은 양질의 데이터를 혁신벤처기업이 손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거대 데이터댐을 건설하고, 이를 과감하게 개방하는 것이 필요하다. 금융당국이 도입한 마이데이터 서비스를 의료, 교통, 통신, 유통, 에너지 분야로 빠르게 확산시킴으로써 이종 산업 데이터 확보를 늘리고, 이종 데이터의 결합과 활용을 촉진해야 한다. 소규모 혁신벤처기업들이 이들 데이터를 활용해 혁신 서비스 출시를 유도하기 위해 Open API를 활성화시키고, Open API를 포함한 혁신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이용할 수 있는 유인체계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최근 다수의 혁신벤처기업들은 자금 부족 못지않게 데이터 부족으로 도산 위험에 빠지는 현상을 뜻하는 이른바 ‘데이터 죽음의 계곡(Data Death Valley)’에 직면한 경우가 많다. 즉 소규모 혁신벤처기업이라도 우수한 알고리즘과 IP(지식재산권) 등을 보유하고 있다면, 핵심 데이터를 손쉽게 확보할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더불어 거대 데이터댐 구축에는 많은 규모의 인적ㆍ물적 자원이 필요하므로 정부와 지자체를 중심으로 공공 데이터센터 설립을 늘리고 혁신 창업가 육성과 지원을 위해 창업보육센터를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1) 이창양, 2016. 1. 25, ‘저성장 탈출, 부가가치 창출 역량 높여야’, 한국경제신문 기고문.
2) CB Insights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