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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경제학적 관점에서 본 해외의 디폴트옵션 사례와 시사점
2022 04/18
행동경제학적 관점에서 본 해외의 디폴트옵션 사례와 시사점 2022-08호 PDF
요약
우리나라는 올해 하반기 퇴직연금 운용과 관련하여 디폴트옵션 제도를 시행할 예정이다. 시장에서는 이러한 제도 도입에 대한 기대가 크지만, 해외와 다소 다르게 설계되어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이에 행동경제학적 관점에서 해외 디폴트옵션의 사례들과 함의를 살펴보았다. 미국의 경우, TDF 등을 적격디폴트옵션에 편입한 연금보호법을 계기로 많은 기업이 보수적인 펀드에서 TDF로 디폴트펀드의 지정을 전환하였다. 일본도 최근 디폴트옵션 대부분이 원금보장형 상품인 점을 개선하고자 정성적 기준을 마련하는 등 법률을 개정하였다. 해외 국가들은 제도적인 개선을 통해 장기투자에 적합한 투자상품으로 디폴트옵션의 지정을 유도하고 이를 넛지하는 추세다. 해외와 달리, 우리나라는 DC형 가입자의 선택권을 보호하는 디폴트옵션 제도를 설계하였다. 퇴직연금사업자가 신중하게 디폴트옵션 상품을 구성하겠지만 여전히 DC형 가입자에게 투자상품의 선택을 요구하는 것이어서 투자에 무관심하거나 금융 문해력이 낮은 DC형 가입자들의 의사결정을 지원하는데 이번에 마련한 제도가 다소 부족할 수 있다. 따라서 시행에 앞서 이를 보완하는 세부적인 규정들을 검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우리나라는 올해 하반기 퇴직연금 운용과 관련하여 사전지정운용제도(이하 디폴트옵션제도)를 시행할 예정이다. 많은 해외 퇴직연금 시장에서 성공적으로 안착한 디폴트옵션제도는 퇴직연금 가입자의 운용수익과 노후 자금 마련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시장에서는 디폴트옵션제도 도입에 대한 기대가 크다. 그러나 디폴트옵션제도의 성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 일본의 사례가 있으며 우리나라 제도가 해외와 다르게 설계되어 있다는 점은 우려되는 부분이다. 해외 정책당국자들은 행동경제학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디폴트옵션을 도입한 측면이 크다. 본고는 이를 중심으로 해외 디폴트옵션의 사례를 살펴보고 디폴트옵션제도의 성공적인 안착을 위한 시사점을 제시한다.
 
 
행동경제학적 관점에서 본 디폴트옵션의 도입 배경
 

퇴직연금 제도는 개인들이 소득의 일정 비율을 매년 저축하여 퇴직 후 노후 자금을 마련하는 것을 지원하고 있다. 퇴직연금 가입자들은 기본적으로 소득이 있는 20~30년에 걸쳐 저축한다. 이렇듯 장기간의 저축이라는 특성으로 인해, DC형 가입자 노후 자금의 크기는 저축상품 또는 투자 포트폴리오 성과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즉 DC형 퇴직연금에서는 가입자들의 합리적인 투자 운용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장기투자를 처음 해보는 일반인들은 퇴직연금 운용상품의 선택을 매우 복잡하고 어렵게 생각한다. 실제로 장기투자로 적합한 운용상품들은 주식이나 채권, 펀드, 대체투자 등의 적절한 조합이다. 따라서 개인들이 운용상품들을 적절하게 선택하고 관리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많은 DC형 가입자들은 그 중요성에 비해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거나 운용상품을 선뜻 결정하기를 꺼린다. 행동경제학의 연구들은 많은 DC형 가입자들이 투자에 무관심하거나 여러 행태적 편의로 인해 투자를 합리적으로 결정하지 않고 있음을 보고하였다. 2000년대 들어와서는 미국을 비롯한 해외 정책당국자들도 이러한 문제를 중요하게 보고 이에 대처하는 방안으로 디폴트옵션1)을 도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해외 주요국의 디폴트옵션 사례
 

본 절에서는 미국과 스웨덴, 일본의 디폴트옵션 사례를 살펴본다. 
 
미국의 대표적인 퇴직연금제도인 401(k)는 디폴트 제도가 매우 활성화되고 있는데, 그 배경에는 정부의 암묵적인 지지와 함께 연금보호법과 같은 법률이 있다. 현재 미국의 기업들 대부분은 특정한 의사 표시가 없는 신규 직원에게 401(k)의 가입부터 적립금 기여율과 적립금 운용상품의 결정에까지 디폴트, 옵트아웃, 자동가입이라는 넛지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기업들은 이를 통해 직원들의 401(k) 가입률을 높이고 투자 포트폴리오 결정을 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제도들이 현재와 같이 일반화될 수 있었던 것은 자동가입제도의 활성화, 적격자동기여협정, 적격디폴트투자상품의 확대 등을 골자로 한 2006년 연금보호법의 영향이 크다.2) 특히 이러한 법 아래에서 밸런스형 펀드나 TDF(Target date fund) 등 투자위험이 있는 펀드들이 적격디폴트투자상품3)에 추가로 편입되었는데, 이러한 변화를 계기로 많은 기업이 TDF를 디폴트옵션으로 지정하기 시작하였다. Vanguard 자료에 따르면 2019년 기준 디폴트옵션 펀드는 TDF가 98%, 밸런스형 펀드와 MMF 및 안정가치펀드가 각각 1%씩 차지하고 있다. 이처럼 급속하게 성장한 이유는 연금보호법 이후 기업과 퇴직연금사업자가 법적인 부담 없이 TDF를 디폴트옵션으로 지정할 수 있었고 TDF가 퇴직연금 운용에 적합한 장기투자 상품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스웨덴의 PPM(Premium pension system)은 정책당국의 기대와 달리 많은 연금가입자가 비합리적으로 투자를 결정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디폴트옵션을 강조하게 된 사례가 된다. 스웨덴 정부는 PPM을 처음 도입할 당시인 2000년에는 캠페인을 통해 연금가입자가 자신들의 펀드를 직접 선택하는 것을 권장하였다. 그러나 매 4~5년마다 퇴직연금 가입자의 투자 운용 행태와 성과를 검토해오면서, 스웨덴 정부는 연금가입자들이 일반적으로 금융 문해력을 가지고 있지 않고 투자에 관심이 낮을 뿐 아니라 행태적 편의도 겪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현재 스웨덴 정부는 이러한 점에 비추어 TDF 유형의 세대 펀드로 구성된 디폴트옵션 펀드를 추천하고 있다. 스웨덴 정부는 PPM 도입 초기 개인들의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존중하는 정책에서 연금가입자의 수준에 맞추어 이들을 지원하는 정책으로 전환한 것이다.
 
일본의 경우, 디폴트옵션제도가 잘 안착하지 못하여 2016년 확정기여연금법의 개정이 이루어진 상황이다. 법 개정이 있기 전까지 보면, 신규 가입자의 디폴트옵션 선택 비율이 15% 수준으로 매우 낮았고 기업 중 96% 이상이 원금보장형 상품을 디폴트옵션으로 지정하고 있었다. 이에 확정기여연금법 개정안에는 투자신탁의 디폴트옵션 지정을 촉진하는 방안으로 디폴트옵션 상품에 대한 정성적 기준이 마련되었다. 정성적 기준은 특정한 운용상품의 배제나 포함을 명시하지 않으나, 물가 변동 리스크에 대비하고 분산투자 효과에 이바지하는 상품을 요구하고 있다. 근로자의 위험선호에 따라 원금보장형 상품도 정성적 기준을 충족할 수 있으나 분산투자 상품이 대체로 그러한 기준에 더 적합하여 디폴트옵션 상품의 변화를 기대하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운영관리기관은 디폴트옵션 상품에 관한 운용 방침이나 수수료 공제 후의 수익 전망 등을 이미지화하는 등 노사가 판단하기 쉽도록 정보를 제공해야 하고 가입자에게도 디폴트옵션의 이익 전망 및 손실의 가능성, 선정이유 등을 알려야 한다. 또 다른 조치로는 특정 기간이 지난 후 운용을 지시하지 않을 때 디폴트옵션의 상품을 선택한 것으로 간주하는 옵트아웃 방식의 절차 규정을 구체화하고 있다. 이러한 제도적 변화는 일본에서도 해외와 같이 장기투자에 적합한 디폴트옵션 상품의 지정과 넛지 방식의 절차를 중요하게 받아들이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국내외 디폴트옵션제도의 비교와 시사점
 

우리나라의 디폴트옵션제도는 근로자가 퇴직연금사업자로부터 디폴트옵션 관련 정보를 받고 그중 하나의 상품을 본인의 디폴트옵션 상품으로 지정하는 방식이다. 즉 하나의 특정한 디폴트옵션 상품을 사전에 지정하여 DC형 가입자의 선택을 요구하지 않는 해외 디폴트옵션제도와 다르게 설계되어 있다. 우리나라 제도는 DC형 가입자가 여러 디폴트옵션 상품 중 최종적으로 하나를 선택하기 때문에 이들의 선택권을 보호한다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DC형 가입자에게 투자상품의 선택을 요구하는 것이어서 디폴트 방식을 통해 투자 선택에 어려움을 가진 이들의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디폴트옵션 본연의 기능이 약화될 수 있다. 따라서 정부는 디폴트옵션제도를 시행하면서 이러한 방식으로 인한 문제점과 개선할 점들을 잘 살펴야 할 것이다.
  
미국이나 일본은 기업들이 디폴트옵션으로 장기투자에 적합한 상품을 지정하도록 제도적인 장치를 두고 있다. 미국에서는 적격디폴트옵션 조항을 두고 있고 일본은 그 대신 디폴트옵션의 정성적 기준과 정보 제공, 투자자 교육에 중점을 둔 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DC형 가입자들이 디폴트옵션 상품 내 장기투자에 적합한 상품의 선택이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할 수 있도록 효과적인 정보 제공이나 투자자 교육 등을 잘 마련해야 할 것이다. 다른 한편, 퇴직연금사업자들은 디폴트옵션을 잘 구성하고 상품 설명을 알기 쉽게 잘 고안하여 투자에 무관심하거나 금융 문해력이 낮은 DC형 가입자의 올바른 선택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퇴직연금사업자 간 디폴트옵션 경쟁이 이러한 방식으로 이루어져 이번에 마련한 디폴트옵션제도가 DC형 가입자의 수익률 제고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1) 디폴트옵션은 정책당국에 의해 승인된 운용상품을 디폴트로 지정하여 투자에 무관심하거나 이를 어렵게 생각하는 DC형 가입자의 투자 운용을 지원하며 때때로 이들의 선택을 유도하는 자유주의적 개입 방식이다.
2) 연금보호법 이전에는 일부 기업들만이 디폴트 제도를 시행하고 있었는데, 노동법이나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규정들로 인해 디폴트 방식의 채택에 제한이 많았다. 정부는 2000년대 초반 이러한 디폴트 제도의 강력한 효과를 밝힌 행동경제학의 연구 결과들을 근거로 이를 제도적으로 지원하는 연금보호법을 도입할 수 있었다.
3) 적격디폴트투자상품은 연금보호법 이전까지 MMF나 채권형 안정가치펀드 등 보수적인 투자상품으로 한정되었다. 이러한 상품을 디폴트옵션으로 지정할 경우 사업주는 운용 결과에 대해 면책을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