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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지속가능연계채권(SLB) 시장의 현황과 과제
2023 10/10
국내 지속가능연계채권(SLB) 시장의 현황과 과제 2023-20호 PDF
요약
2023년 7월 현대캐피탈이 국내 첫 지속가능연계채권(Sustainability-Linked Bonds: 이하 SLB)을 성공적으로 발행했다. 2022년 10월 SLB가 한국거래소 사회책임투자 세그먼트에 도입된 이후 1년 가까이 발행이 없던 상황에서 이번 SLB 발행 사례는 고무적인 소식이다. SLB는 전통적 ESG채권, 특히 녹색채권 발행이 어려운 기업을 위해 개발되었다. SLB는 자금조달 사용의 제한을 풀어주고, 비친환경적 기업의 발행도 가능하게 해주기 때문에 국내 도입에 따른 높은 활용도가 예상되었다. 그러나 아직 국내 SLB 발행 실적은 기대에 못 미치는 수준이며, 이는 SLB에 대한 인식 부족과 SLB 설계의 복잡성이 일부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현대캐피탈의 발행 사례를 통해 SLB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국내 SLB 시장의 활성화를 위한 과제에 대해 짚어볼 수 있다.
2023년 7월 현대캐피탈이 국내 최초 원화 SLB를 발행했다.1) SLB는 2022년 10월 한국거래소 사회책임투자 세그먼트를 통해 국내에 도입되었으나, 1년 가까이 발행 사례가 없었던 상황이었다. 따라서 이번 현대캐피탈의 성공적 SLB 발행은 고무적인 소식이다. SLB는 전통적 ESG채권(녹색채권, 사회적채권, 지속가능채권), 특히 녹색채권 발행이 어려운 기업들의 시장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개발되었다. 그간 비친환경적 산업에 속하거나, 적격 프로젝트가 부재한 기업의 경우 녹색채권 시장의 접근성이 제한되었다.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를 가진 국내에서 민간기업의 녹색채권 발행이 부족한 상황도 이러한 이유에 기인한다. SLB는 발행기업의 친환경 여부나 자금사용의 제한을 두고 있지 않기 때문에 보다 많은 기업의 시장 참여를 가능하게 해준다. 국내에서도 SLB 도입으로 민간기업의 높은 활용도가 예상되었으나, 현재로서는 다소 기대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아직 SLB에 대한 국내 인지도가 낮고, 이와 더불어 SLB 설계가 다소 복잡한 측면이 일부 원인을 제공한다. 국내 SLB 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SLB의 구조에 대한 이해와 풀어야 할 과제에 대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SLB의 구조 및 특징

전통적 ESG채권은 조달자금의 사용을 적격 프로젝트로 국한하는 특징을 지닌다. 이는 ESG 워싱(washing)을 방지하기 위해 마련된 장치이지만, 동시에 시장 참여를 제한하는 부작용도 지닌다. 조달자금의 낮은 활용도와 적격 프로젝트가 부재한 기업은 ESG채권을 발행할 유인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비친환경적 기업의 녹색채권 발행은 본래 취지에 어긋나는 것으로 간주되어 인증받기가 어렵다. 

SLB는 기후변화 등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중대한 환경ㆍ사회적 문제의 개선을 위해서는 보다 많은 시장 참여가 필요하다는 인식하에 개발되었다. SLB는 조달자금의 사용 범위를 특정하지 않고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해주며, 비친환경적 기업의 발행도 제한하지 않는다. 대신, SLB 발행기업은 특정한 환경ㆍ사회적 목표의 달성을 약속해야 하며, 이에 대한 세부적 조건을 SLB에 포함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SLB는 발행기업이 ‘무엇을’, ‘얼마나’, ‘언제까지’ 달성할 것으로 약속하고 달성ㆍ미달성시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에 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SLB 발행사는 ‘핵심성과지표(Key Performance Index: KPI)’를 정하고, 이에 기반하여 적정 수준의 ‘지속가능 성과목표(Sustainable Performance Target: SPT)’를 약속한다. 또한, 이러한 SPT를 언제까지 달성할지에 대한 ‘목표일(target date)’과 SPT 달성 여부에 따른 재무적 ‘유인책(incentive)’을 SLB 발행설명서에 명시해야 한다.

2019년에서 2022년 사이 글로벌 시장에서 발행된 SLB를 살펴볼 경우 95% 이상이 환경 개선에 목표를 두고 있다.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KPI는 탄소배출량이며, SPT는 발행기업의 탄소배출량을 특정 연도 대비 채권 만기 이전 얼마나 감축하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떠한 기업이 2020년 대비 2025년까지 탄소배출량을 20% 감축하는 것이다. SPT 달성의 목표일은 보통 채권 만기일에 가깝게 설정되어 있다. SLB가 사용하는 인센티브에는 다양한 유형이 있다(<표 1>). 이중 SPT 미달성시 목표일에서 만기일까지 이자율이 정해진 수준 증가하는 이자율 할증(coupon step-up)이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다.
 


현대캐피탈 SLB 발행 사례 

SLB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현대캐피탈이 발행한 SLB의 구조를 살펴본다. 현대캐피탈은 자사의 ESG 전략 추진의 일환으로 ‘친환경차 할부 비중 확대’를 위해 2023년 7월 총 2,200억원에 달하는 5건의 SLB를 발행했으며, 만기는 1.6년에서 5년에 달한다(<표 2>).
 

현대캐피탈이 사용하는 KPI는 전체 자동차 할부금융 취급 건수 중 전기차 등 친환경차의 비중이다. SPT는 자동차 대수 기준 2023년에서 2027년 사이 매년 친환경차 할부금융 비중을 기존에 비해 1% 확대하는 것이다. 2022년 기준 친환경차 할부금융 비중은 12%에 달하며, 2027년까지 이를 17%로 증가하겠다는 목표다(<표 3>). SPT 달성 목표일은 매년 12월 31일로 설정되어 있다.
 

현대캐피탈이 사용하는 인센티브는 상환할증 프리미엄이다. SLB의 상환기일 직전 사업연도말 SPT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 채권 발행금액의 0.02%에 채권만기를 곱하여 산정된 프리미엄을 상환기일에 최종 채권자의 보유 비율에 따라 현금으로 일시에 지급하도록 되어 있다(<표 4>). 
 

현대캐피탈의 사례는 SLB가 가지는 장점을 보여준다. 현대캐피탈은 SPT의 달성을 위해 현대자동차 그룹과 적극적 협력, 친환경차 할부 상품 판매 확대, 전기차 조직 신설, 배터리 리스 상품 개발, 배터리 제조업체 및 전기차 충전소 관련 금융상품 개발 등 다양한 방안들을 활용할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활동들은 하나의 적격 프로젝트로 통합하거나, 개별적 활동에 투입된 자금별 영향평가를 하기 어렵기 때문에 녹색채권 발행이 용이하지 않다. 반면, SLB를 통해서는 자금활용의 용도와 상관없이 최종적으로 SPT의 달성 여부만을 보기 때문에, 다양한 ESG 전략을 추진할 수 있다.

현대캐피탈 사례는 SLB 설계의 복잡성도 보여준다. 첫째, 현대캐피탈이 SLB를 발행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자금조달 비용 절감 효과가 있어야 한다. 이러한 비용 절감은 시장의 녹색 프리미엄(green premium)에 따라 결정되는데, 그 수준을 가늠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특히 국내 시장에서는 녹색 프리미엄이 충분치 않다는 인식이 일반적이다. 둘째, SPT 수준의 설정 및 평가의 어려움이 있다. SLB에 대한 기준을 마련하고 있는 국제자본시장연맹(International Capital Markets Association: ICMA)에 따르면 SPT는 일상적 사업활동 이상의 노력이 필요한 ‘야심적’ 수준이여야 한다고 설명한다. 이에 따르면, 현대캐피탈이 제시하는 친환경차 할부금융 비중의 연간 1% 상승은 적어도 국내 친환경차 판매의 증가세를 상회하는 수준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어느 정도가 ‘야심적’인지는 평가가 쉽지만은 않다. 셋째, 인센티브의 설정 및 평가 또한 어렵다. 현대캐피탈이 상환할증 프리미엄을 너무 낮게 잡을 경우 SLB 투자 수요가 감소하게 되며, 이로 인해 녹색 프리미엄도 감소한다. 반면, 상환할증 프리미엄을 너무 높게 잡을 경우 현대캐피탈 입장에서 위험부담이 증가하여 SLB 발행 유인이 줄어든다. 이처럼 녹색 프리미엄, SPT 및 인센티브의 수준은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으며, SLB의 설계가 쉽지만은 않은 이유다. 


국내 SLB 시장 활성화를 위한 과제

2022년 SLB가 국내 시장에 도입된 이후 상당 기간 발행 사례가 없어서 우려된 측면이 있었는데 최근 국내 첫 SLB 발행이 이루어진 점은 고무적이다. 그러나 국내 SLB 시장이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위해서는 풀어야 할 숙제도 상당한 것으로 보인다. 전통적 ESG채권의 경우 자금조달 사용의 불편함은 있지만, 녹색 분류체계(green taxonomy) 등 적격 프로젝트에 대한 기준과 이미 상당한 발행 사례가 축적되어 시장의 벤치마크가 형성되어 있다. 반면 SLB의 설계를 위해서는 KPI 및 SPT의 설정과 평가를 위한 데이터, 벤치마크, 평가방법론 등이 필요한데 현재 국내에서는 이러한 부분들이 충분히 마련되어 있지 못하다. 이러한 문제들은 보다 많은 기업들이 SLB 시장에 참여하여 데이터가 축적되고 벤치마크가 형성되면서 점차 해소될 것으로 기대된다. 국내 SLB 시장의 발전을 위한 선순환 구조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1) 2023년 1월 SK하이닉스가 국내 기업 최초로 해외 시장에서 10억 달러 규모의 SLB를 발행했다.